10월 9일(이하 한국 시각), 디비전 시리즈를 치렀던 아메리칸리그 팀들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승리 없이 2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던 뉴욕 양키스가 일본인 선발투수 다나카 마사히로의 역투에 힘입어 반격에 나섰다. 같은 날 열렸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리즈도 2패에 몰렸던 레드삭스가 반격에 성공했다.
특히 양키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30팀 중 포스트 시즌에서 우승 경험이 가장 많을 정도로(월드 챔피언 27회) 잔뼈가 굵은팀이었고, 인디언스는 현재 30팀 중 우승을 못한 시간이 가장 긴 팀(69년)이었다. 인디언스는 작년에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이전까지 우승 못한 시간이 가장 길었던 시카고 컵스(108년)에게 7차전 혈투 끝에 패하고 말았다.
양키스는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꺾었으나, 아메리칸리그 1위를 차지했던 인디언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처음 2경기를 내리 패하고 말았다. 1차전은 트레버 바우어의 호투에 막혀 한 점도 내지 못했고, 2차전에서는 인디언스의 에이스 코리 클루버를 무너뜨렸으나 이후 앤드류 밀러를 중심으로 한 계투진을 무너뜨리는 데 실패했다.
명품 투수전, 다나카의 투혼
이 날 경기는 이전까지의 2경기와는 달리 투수들의 짠물 피칭으로 경기가 전개됐다. 인디언스의 선발투수 카를로스 카라스코가 5.2이닝 3피안타 3볼넷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다나카도 7이닝 3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록했다.
특히 생애 두 번째 포스트 시즌 등판이었던 다나카는 2번 모두 일리미네이션 게임에 등판하는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됐다. 이전 등판은 2015년 와일드 카드 결정전이었는데, 당시 다나카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 경기에 등판했는데, 5이닝 2피홈런 2실점으로 패전을 당했다.
단판 승부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다나카는 이번에는 5전 3선승제로 열리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지면 탈락하는 경기에 또 나오게 됐다. 다나카는 4회초 제이슨 킵니스에게 3루타를 맞으며 실점 위기에 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호세 라미레스(낫 아웃)와 제이 브루스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1988년 일본 효고현 이타미시 태생의 다나카는 2006 고졸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아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최연소로 선발되고, 2011년 박찬호에게 NPB 첫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으며, 2013년에는 212이닝 24승 무패 평균 자책점 1.27이라는 엽기적인 기록을 세우고 팀의 재팬 시리즈 챔피언 등극에도 기여했다.
포스팅 시스템에 나온 다나카는 당시 다르빗슈 유, 류현진(이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의 연이은 활약으로 인하여 아시아 투수들의 성공 사례 후광을 받았다. 입찰가 상한선(2000만 달러)을 가뿐하게 기록한 다나카는 양키스와 7년 1억 55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2014년과 2016년에는 준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2015년에 부진했고, 2017년 정규 시즌에는 평균 자책점이 4.74까지 치솟는 등 롤러 코스터의 성적을 보였다. 타자 친화적인 양키 스타디움을 홈 경기장으로 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14년을 제외하고 피홈런이 매 시즌 20개를 넘겼다.
특히 2017년에는 30경기 등판에 35피홈런이라는 다소 우려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점 때문에 와일드 카드 결정전 선발투수로 다나카 대신 루이스 세베리노가 내정되는 등 입지가 다소 줄어들기도 했다. 다나카는 올 시즌이 끝나면 옵트 아웃을 행사할 수 있는데, 최근의 성적 변화로 인해 옵트 아웃 행사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다나카는 이러한 우려들을 잠재우는 역투를 펼쳤다. 팀 타선이 상대 투수 카라스코를 마운드에서 끌어 내리면서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인디언스 불펜의 핵 앤드류 밀러가 등판하면서 다나카에게 득점 지원이 한 점도 없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나카는 7회에 타자들을 삼자범퇴 처리하면서 임무를 마쳤다(92구).
다나카가 7회초 수비를 마친 뒤 7회말 공격에서 양키스는 인디언스 불펜의 핵 밀러를 상대로 결정적인 홈런이 나왔다. 이 홈런 한 방이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었고, 양키스는 소중한 승리를 챙기게 됐다. 반면 인디언스는 2016년 ALCS MVP에 빛나던 밀러가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스윕으로 시리즈를 끝내려 했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마쓰자카, 류현진에 이은 아시아 투수 3번째 PS 7이닝 무실점
양키스 선발투수가 포스트 시즌에서 7이닝 이상 무실점 투구를 한 기록은 무려 7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 2010년 당시 양키스의 선발투수였던 필 휴즈(현 미네소타 트윈스)가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트윈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다만 휴즈는 이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4이닝 7실점, 4.2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면서 그 빛이 바랬다.
휴즈의 7이닝 무실점 기록보다 더 이전 기록을 찾으려면 2001년까지 올라가야 한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출신이었다가 양키스에 이적한 이후 은퇴할 때까지 에이스로 활약했던 마이크 무시나(통산 270승 153패 3.68, 포스트 시즌 7승 8패 3.42)가 2001년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양키스의 이전 기록도 무시나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었던 투수들의 기록이다. 포스트 시즌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앤디 페티트(통산 256승 153패 3.85, 포스트 시즌 44경기 19승 11패 3.81)도 2000년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역대 탈삼진 3위에 올라 있는 로저 클레멘스(통산 354승 184패 3.12 4672탈삼진, 포스트 시즌 35경기 12승 8패 3.75)는 2000년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도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양키스는 2000년에 26번째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다나카의 기록을 아시아 출신 투수들의 기록으로 살펴봐도 대단한 기록이다. 아시아 출신 투수들이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적은 2008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일본,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가 처음이었다.
이후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류현진(대한민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당시 2패로 몰렸던 다저스는 류현진의 활약에 힘입어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3번째 기록이 다나카에게서 나왔다.
위기에서 팀을 구한 다나카의 역투로 양키스는 탈락 위기를 일단 모면했다. 포스트 시즌에 있어서 메이저리그 30팀 중 가장 관록이 많은 양키스인 만큼 싱겁게 끝날 뻔했던 디비전 시리즈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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