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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가지고 놀다가 법정 선 밴드 "후회하지 않는다"

[현장]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담은 활기 그리고 청춘의 삶

17.08.18 14:44최종업데이트17.08.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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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주역들. 왼쪽부터 정윤석 감독, 국보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되기도 했던 박정근, 밴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 장성건, 뮤지션 단편선.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주역들. 왼쪽부터 정윤석 감독, 국보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되기도 했던 박정근, 밴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 장성건, 뮤지션 단편선.찬란

'김정일과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와 같은 글을 SNS상에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청년. "북한이 똥이면 남한은 오줌이다"라고 항변했지만 6년 전 한국 사회는 그 메시지를 노래한 청년들에게 불온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1심 유죄, 대법원에서 겨우 무죄선고를 받았던 청년 박정근씨와 그와 함께 북한과 김일성, 김정일을 펑키한 멜로디에 담아 노래한 밴드 밤섬해적단의 이야기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17일 서울 용산CGV에서 언론 시사 후 간단한 간담회 자리가 있었다. 현장엔 연출을 맡은 정윤석 감독과 밤섬해적단 멤버 권용만, 장성건, 인디뮤지션 단편선, 그리고 박정근이 참석했다.

화가 많이 나있었다

찬란

재판은 끝났지만 이 일 이후 밴드는 해체했고,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이 청년들의 삶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북한을 가사에 담아 전위적인 노랠 하는 밴드 결성에 대해 권용만은 "밴드를 처음 할 때 음악 판에도 그렇고 나라에도 화가 많았다"며 "밴드를 해체했다고 화가 없어진 건 아니고 우리 음악 방식이 뭔가 한 물 가게 돼서 그렇게 됐다. 우리도 음악적 견해 차이가 있었고"라고 운을 뗐다.

지난 6년 간 자신들의 흔적이 담긴 영화를 본 뒤 장성건은 "북한 얘길 하다가 잡혀간 걸 감독님이 따라다니며 찍었는데 요즘에선 북한 얘길 잘 안 한다"며 "저때 왜 북한을 재밌어했을지 그 생각을 다시 했다. 너무 우리가 불쌍할 때 촬영한 영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영화에 출연한 단편선 역시 "재미로 우리가 했던 일들로 일반 사람들이 겪지 않는 고생을 했다는 걸 영화로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찬란

이들을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아온 정윤석 감독은 "이 친구들이 당시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을 영화로 잘 번역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며 "그 과정에서 박정근씨가 구속됐고, 영화를 통해 레드콤플렉스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제가 전작이었던 <논픽션 다이어리>를 찍던 때와 맞물려 있던 시점인데 저란 사람이 인물다큐를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장면 보여주면 어떨지 연출자로서 호기심이 있었다. 또 밤섬해적단 노래가 마치 소음처럼 사람들에게 들린다고 하는데 나름 메시지가 있잖나. 그걸 극장 화면으로 투사하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박정근씨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친구는 유희적으로 북한 가지고 놀았다지만 우리 사회 존재하는 금기들이 있더라. 그걸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장 없는 성장

시끄러운 사운드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로 '키치적', '전위적'이라 평가받던 밤섬해적단은 이제 없다.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고, 이들은 음악 활동과 생업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 혹 과거에 대한 어떤 아쉬움은 없었을까. 없다면 요즘은 무엇에 재미를 느끼며 살까. 일단 참석자 모두 "후회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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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거를 화면으로 다시 보니 창피한 건 있지만 그 과거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 요즘 재미를 느끼는 거? 유투브에서 미친 사람들 보는 게 제일 재밌다. 재밌는 유투버들이 많더라." (권용만)

"저도 과거 부정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다 그러고 사는 거 아닌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각자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전 별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고 있다." (장성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주변사람들과 긴밀하게 재판을 준비해서였다. 그 사이 제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줬다. 다만 실망한 게 있다면 그 사건이 주류 언론,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잘 다루지 않았다는 거다. 요즘은 북한을 가지고 노는 건 재미가 없다. 지난 3년 간 재판에서 줄곧 북한을 말해서일까. 요즘엔 본업(사진작가)에 집중하고 있다." (박정근)

"이 영화가 좋은 개인적 이유는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됐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 삶이 쓰레기였다 말하는 게 아니라서다. 저도 지금 밴드를 하고 있지만 보통 인물 다큐하면 뭔가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마련인데 그게 없어서 좋았다. 우리 과거를 부정할 것도 긍정할 것도 없다. 마음 가는대로 친구들이 살고 있어서 좋다. 요즘 재밌는 게 별로 없는데 만화방에서 김혜린 작가의 <불의 검>을 읽을 때가 제일 좋다." (단편선)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찬란


밤섬해적단 국가보안법 김정은 북한 인디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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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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