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때 한국축구의 미래로 꼽히던 '유망주' 이승우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향후 거취를 놓고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승우의 형이자 에이전트인 이승준이 감성 섞인 비아냥으로 맞대응했기 때문이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B팀(2군)에서 프로리그 데뷔를 눈앞에 뒀지만 한 팀에 비유럽권 선수를 2명 이상 초과해 둘 수 없다는 '비유럽선수 쿼터' 제도로 출전 기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와 함께 이승우의 장래를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뛸수 있는 새 팀을 찾아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이승우의 형이자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이승준이 이승우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승준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조언을 해주려면 만나서 해주지 또 손으로"라며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분명 '갓'이라는 단어를 본 게 월드컵 때인 것 같은데 그럴 바엔 위닝할 때 조언해주지 그랬어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어 "남자가 정말 남자답지 못하네요. 뭐 그 부분은 전부터 알았지만"이라고 인신공격적인 비아냥을 덧붙이기도 했다.
서형욱 해설위원 '평가 의식 말고 본분에 집중하라'이승준이 언급한 대상은 서형욱 MBC 축구해설위원 겸 축구 칼럼니스트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형욱은 하루 전 '코리안 메시 이승우에게 보내는 고언'이라는 칼럼에서 그간 이승우의 행보에 대하여 '쓴소리'를 날린 바 있다.
해당 칼럼에서는 이승우가 너무 이른 나이에 스타 반열에 올라 "기대가 현실을 앞지르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아직 프로에 데뷔조차 못한 이승우의 현실이 가요계로 치면 아직도 '연습생' 신분에 불과하고도 지적하기도 했다. 한때 세계적인 축구신동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프레디 아두(미국)나 무명을 딛고 '한국축구의 전설'이 된 박지성의 사례를 나란히 비교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이승우가 한때 유망주였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선수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바르셀로나를 떠나 당장 뛸 수 있는 새로운 팀을 찾는 게 급선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말고 '축구선수로서의 본분'에만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다. 언론도 아직 유망주에 불과한 어린 선수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좀 더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해당 칼럼의 내용만 놓고보면 사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치에 어긋나는 주장이나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승준의 예민한 반응은 최근 한동안 연일 계속되고 있는 이승우에 대한 국내 언론의 비판적 태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누적돼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오르락내리락했던 이승우에 대한 평가이승우가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한때 국내 미디어와 팬들은 일방적인 찬사를 보냈다. 명문 바르셀로나 소속이라는 화려한 배경에, 세계 축구계도 인정하는 대형 유망주라는 외신의 평가는 국내 축구계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나이 또래의 흔한 한국 선수들에게 볼 수 없는 강한 개성과 톡톡튀는 언행은 화려한 스타성으로 포장됐다. 어쩌면 차범근-박지성-손흥민 같은 스타에 굶주려온 대중의 높은 기대감이 반영된 인기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승우의 성장세가 정체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FIFA의 징계로 약 3년간 공식경기 출전정지를 당한 것이 이승우의 미래에 결정적인 타격이 됐다. 세계 각국의 비슷한 또래 유망주들이 하나둘씩 프로에 데뷔해 자리를 잡아갈 동안 이승우는 거의 경기에 나가지 못했고 지금도 프로 데뷔는커녕 2부리그 소속인 바르셀로나B에서조차 뛰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때부터 국내에서도 서서히 이승우가 과대평가됐다는 반응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간 호불호가 엇갈렸더 이승우의 튀는 언행들도 오히려 역풍으로 되돌아왔다.
잘나갈 때는 비행기를 태워주다가도, 조금만 이용 가치가 떨어자면 땅바닥까지 추락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여론의 이중성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는 지난 6월 '이승우는 어쩌다 후전드가 됐나'라는 기사에서 이승우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조롱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사의 일부분은 살펴보자.
"후전드는 '후베닐+레전드'를 줄인 단어다. 레전드라 하니 마치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고등학생을 가리켜 일진 4대 천왕이라 부르는 꼴이다. 나이가 찼는데도 성인팀에서 불러주지 않아 유소년 팀에 머무르는 이승우의 처지를 희롱하는 것."문제는 이승우가 직접 주장한 말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악플러들이 주로 쓰는 저급한 표현을 인용해 선수를 악의적으로 비하한 글이었다는 점이다. 이승우·이승준 형제도 이 기사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불쾌함을 표시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승우 측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형욱의 칼럼에 대한 반응도 내용 자체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결국 '잘 나갈 때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이제 와서 너나 할 것없이 손가락질하는' 미디어의 기회주의적인 행태에 대한 불만에 더 가까워보인다. 아무리 그럴듯한 예시를 들고 진지한 고언을 하는 척 해도, '결과론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만큼 손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은 이승우에 있다그런데 이승우 측도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있다. 이승우라는 선수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인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FIFA의 출전정지라는 악재는 이승우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 이후의 거취는 전적으로 이승우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이승우가 20세가 된 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적이나 잔류같은 복잡한 문제를 이승우 혼자서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유망주가 축구선수로서 착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주변에서 이승우를 제대로 보호하거나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지 못하면 그 비판과 책임은 결국 이승우 본인에게 돌아가게 되고 만다. 이승우에게는 팬들의 기대와 애정이 그만큼 높기에 비판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축구선수에게 '발'이 실력을 증명하는 도구이듯이, 언론은 '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본분이다. 아무리 듣기에 거슬리는 내용이라고 해도, 언론의 정당한 비판과 문제제기에도 감정 섞인 비아냥이나 유치한 인신공격으로 대응하는 건 성숙하지 못하다. 유명선수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를, 개인 대 개인간의 사적인 조언 차원으로 인식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여론의 속성은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속에서 흔들리지않고 중심을 잡는 것이 유명 축구선수에게 요구되는 자질이기도 하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때로는 쓴소리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호날두·메시같은 슈퍼스타들도 때때로 욕을 먹는다. 듣기 좋은 말만 기대하는 것은 선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칭찬 속에 독이 들어있을 수 있고, 비판 속에 약이 있을 수도 있는 법. 무엇이 이승우를 흔들거나 혹은 진정으로 살리는 길인지 분간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 이승우 측이 신경써야 할 일은 언론과의 쓸데 없는 감정싸움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프로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지 않은가.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