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물 받은 페미니즘 도서를 인증한 김윤석.
김윤석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끈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바로 그의 팬들이 직접 손편지와 함께 여성주의 도서를 전달하고, 김윤석이 사진을 찍어 이 사실을 인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행동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혐오와 폭력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앎'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엄청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발언이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이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런 말을 부러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과는 '몰랐다'는 말로 시작했다.
말하자면 모든 폭력과 혐오는 '알고자 하지 않는 게으름'에서 출발한다. 인간관계는 서로서로 알고자 노력하는 부단한 노동의 연속이다. 이를 충실히 행하지 않는다면 타인에 대한 나의 지식에는 빈 곳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실수의 여지는 그만큼 넓어지게 마련이다.
지금껏 이번 사건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사과한 이들은, 이 같은 앎의 노동이 불필요한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몰랐다'는 부족하다. 그것은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이 사과를 넘어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 사실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가능케 한 권력을 계속 쥐고 있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윤석이 지금껏 사람들이 걷지 않았던 길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그는 팬들이 보내준 책을 받았고 그것을 읽겠다고 말했다. '몰랐으니까'가 아니라 '그러니 이제는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변화를 약속했다.
나는 김윤석의 이 같은 행동이 우리 사회의 남성들에게 필요한, 특권을 내려놓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틀렸다. 모르면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게 된다. 때로 앎은 단순한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같은 사실을 정확히 직시한 김윤석의 사례가 좋은 선례로 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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