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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같은 판타지 로맨스, 왠지 끌린다

[한뼘리뷰] 판타지 화법으로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 <사랑은 부엉부엉>

16.12.24 15:08최종업데이트17.02.1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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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찬란

내성적인 성격의 로키(람지 베디아 분)는 마치 투명인간 같은 남자다. 동네에서나 직장에서나 고양이보다도 못한 존재감으로 없는 사람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깬 로키는 자신의 집 거실 소파 위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 부엉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는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심지어 직접 부엉이 탈을 쓴 채 밖에 나서도 시선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풀 죽어 있던 로키 앞에 팬더 탈을 쓴 수수께끼의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된다.

영화 <사랑은 부엉부엉>은 현실과 판타지가 교묘하게 뒤섞인 작품이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가 도심 주택 안에 살림을 차렸다는 설정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 로키를 향한 주변의 태도가 무시를 넘어 무감각으로까지 보이는 것도 그렇다. 영화의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판타지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그 경계가 모호하다. 모든 장면이 좀 우스꽝스러운 현실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죄다 하룻밤 꿈 속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찬란

재미있는 건 바로 이러한 애매모호함이야말로 영화의 개성이자 매력을 이루는 주된 요소라는 점이다. '뜬금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전제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친절한 플롯에 익숙한 관객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산으로 또 산으로 가던 영화가 후반부 부엉이와 팬더의 모습을 한 두 남녀의 만남을 통해 돌연 판타지 로맨스로 전환되는 전개는 그 중에서도 정점이라 할 만하다. 부엉이 탈을 쓴 로키와 팬더 탈을 쓴 여자의 데이트는 개연성이 배제된 채 유유히 이어지는데, 덕분에 군중 속 비현실적인 이들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비친다.

모두가 로키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와 교류하는 몇 안 되는 인물들은 영화 속 온기를 이루는 또 다른 줄기다. 특히 로키가 부엉이를 떠앉게 된 뒤 조언을 얻고자 찾아간 조류 가게 주인, 그리고 로키 집 아래층에 사는 왕년의 팝스타 미스터 바나나는 작은 비중에도 큰 울림을 남긴다. 어딘가 수상하면서도 코믹한 이들과 로키 사이의 에피소드들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일 수 있는 이 영화에 나름의 객관성을 부여한다. 더불어 영화 속 숨겨진 장치로써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
<사랑은 부엉부엉>의 한장면찬란

무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주인공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위안을 얻고 시련을 극복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 오르는 로맨스가 주인공의 성장(또는 각성)을 이끌고 평화를 선사한다. <사랑은 부엉부엉>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틀은 앞서 국내 관객에게 사랑받은 몇몇 프랑스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2001),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2005) 속 장면들이 겹쳐 보이는 건 이러한 같은 맥락에서다.

<사랑은 부엉부엉>의 각본과 연출, 주연을 겸한 람지 베디아는 "팬더 탈을 쓴 남자가 나온 치즈 광고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광고 속 팬더는 화가 나 있었는데, 그게 "팬더 의상을 입은 그를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희미한 자신의 존재감을 밝히기 위해 부엉이 탈을 쓰고 거리에 나선 영화 속 로키. 그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스스로를 각인시키려는 한 창작자의 의중이 엿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오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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