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고생>은 그동안 봐왔던 수작 독립영화보다 객관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은 훨씬 농후하다. 실험적인 정신과 패기가 돋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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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생각할 수도 한없이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여고생>은 그런 영화다. 짜임새가 형편없을 정도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또 그게 굉장히 실험적으로 비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90여 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상당한 장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렇지만 OST 등으로 끌고 가는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는 '샤랄라' 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장면과 사건 간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설명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한둘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KAFA 기획전'이라는 타이틀이 추구하는, 추구해야 하는 '신선함'과 '패기'엔 어떤 작품보다 걸맞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장르와 메시지가 공존한다. 진숙이가 은영과 은영의 엄마에게서 스리슬쩍 느낀 '가족의 마음', 드라마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패거리들과 대치하며 도망가는 장면, 액션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가는 과정, 추적 액션 스릴러 장르다. 그 와중에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휘말리기도 하니, 스릴러 장르다. 은영의 엄마와 연관된 사건의 전말, 사회 고발 장르와 더불어 블랙 코미디 장르다. 더 대라면 댈 수 있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나열인데,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려다 보니 짤막할 수밖에 없다. 짤막하다고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을 거다. 오히려 촌철살인의 묘미를 던져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다. 흥미롭고 실험적인 도전에 머물렀다고 말하고 싶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장'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더더욱 실험적이면서 대놓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 반대에 위치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개체, 진숙과 은영의 '연대'는 소중하다. 더불어 진숙의 모습으로 보이는,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여성'의 모습도 소중하다. 또한 비록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돈에 대한 기가 막힐 정도의 '욕망'과, 이미 돈에 눈을 떴지만 단칼에 이를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도 소중하다. 이 영화는 이처럼 소중한 것들을 상당히 많이 보여주었다.
그동안 봐왔던 수없이 많은 '좋은' 독립영화들보다는 전체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을 봤을 때 발전 가능성은 농후하다. 오히려 여러 수작 독립영화의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작품 <여고생>이야말로 독립영화다운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독립영화에서 일종의 정석처럼 여겨지게 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을 통해 보이는 한국 사회의 속살 고발' 형식이 파괴됐기 때문에. 정해진 형식은 계속 파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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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