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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하야가 실제로 가능하냐고? 역사가 주는 교훈

[안 뻔한 티켓북] 도라지가 만개할 그 날을 꿈꾸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

16.11.10 18:01최종업데이트16.11.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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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최적의 시기 열강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 그 틈바구니에 작은 균열이 보였다. 이 균열을 이용하면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가능성이었다.
최적의 시기열강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 그 틈바구니에 작은 균열이 보였다. 이 균열을 이용하면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가능성이었다.곽우신

"지금이 우리가 독립할 최적의 시기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서둘러 모든 제도를 혁신하고, 분열된 국론을 수습하고, 밖으로는 세계에 독립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1884년, 제국주의 열강들이 야욕의 이빨을 드러냈다.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야수들이 싸우는 그 틈바구니에서, 조선은 독립을 향한 작은 염원을 품는다. '비운의 왕' 고종은 '한 명의 혁명가' 김옥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개각 김옥균의 개각이 단행된다. 고종은 "허한다"고 답한다. 이 혁명에 마음을 주었다. 왕의 마음을 받은 청년들이 불타오른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산화일 줄 누가 알았으랴.
개각김옥균의 개각이 단행된다. 고종은 "허한다"고 답한다. 이 혁명에 마음을 주었다. 왕의 마음을 받은 청년들이 불타오른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산화일 줄 누가 알았으랴.곽우신

"좌의정 이재원."
"허한다."
"우의정 홍영식."
"허한~다."
"전후영사 박영효."
"허~한다."
"좌우영사 서광범."
"허한다! 내 너를 믿는다. 그러니, 내 마음이라도 가져가라."

박영수의 고종 <곤 투모로우> 속 고종은 유약한 인물이다. 자신이 꾸는 꿈은 있지만, 그 꿈을 펼치기에는 심지가 굳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방황한다. 김옥균을 그림자처럼 여겼던 그는, 그 그림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몸부림친다.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이어 이 극에서도 고종을 맡아 연기한 박영수는 자타공인 고종 전문 배우, 고종 장인으로 발돋움했다.
박영수의 고종<곤 투모로우> 속 고종은 유약한 인물이다. 자신이 꾸는 꿈은 있지만, 그 꿈을 펼치기에는 심지가 굳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방황한다. 김옥균을 그림자처럼 여겼던 그는, 그 그림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몸부림친다.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이어 이 극에서도 고종을 맡아 연기한 박영수는 자타공인 고종 전문 배우, 고종 장인으로 발돋움했다. 곽우신

주군께서 주신 마음을 가슴에 품고, 개각이 단행됐다. 우정총국의 불이 오른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그러나 그 불은 구체제를 채 태우기도 전에 일본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꺼져버리고 만다.

"하늘이 나를 버린단 말인가!"

급진개화파의 수장 격이었던 김옥균은 그렇게 혁명에 실패한 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인천으로 피신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아 일본으로 몸을 의탁한다. 한때 김옥균을 믿었던 고종은 큰 실망과 배신감, 여기에 주변의 압력까지 더해져 김옥균 암살령을 내린다. 고종의 명을 받은 '암살자' 홍종우. 평등한 나라 프랑스에서 행복한 날을 보내면서도, 자꾸만 조선을 그리워하던 그에게 고종의 서신이 도착한다. 그렇게 멈췄던 혁명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 이지나의 또 다른 실험

옥균과 종우 고종의 암살령을 받고 일본에서 옥균에게 접근한 종우는, 위험에 빠진 옥균을 구하며 그의 신임을 얻는다. 자신의 희망이었던 옥균을 실제로 본 종우.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옥균과 종우고종의 암살령을 받고 일본에서 옥균에게 접근한 종우는, 위험에 빠진 옥균을 구하며 그의 신임을 얻는다. 자신의 희망이었던 옥균을 실제로 본 종우.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곽우신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그 커튼을 내린 창작 초연 작품이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19번째 공연인 이 <곤 투모로우>의 연출은 국내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인 이지나가 맡았다.

이지나 '표' 작품은 균일하지 않다. 완성도의 편차가 있기에 결과물이 아쉬울 때도 분명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지나 연출의 최고 장점은, 자기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작품별로 균일하지 않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물론 사진이나 프레임을 활용한 무대 연출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쓰임새와 느낌이 작품별로 사뭇 다르다.)

대신 그는 끊임없는 '실험'에 집중한다. '쇼 비즈니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뮤지컬이라는 무대 위에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2016년 그녀가 연출한 여러 작품 중에서 특별히 비슷한 작품이 없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키치한 B급 감성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데 방점을 찍었고,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유미주의라는 예술 철학적 주제를 풀어내는 시도였다.

<잃어버린 얼굴 1895>와 <곤 투모로우>가 동시대를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사진과 관련된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양면을 담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관객에게 맡긴다. 반면 <곤 투모로우>는 선명한 누아르다. 고종을 제외하면 인물에 대한 표현도 보다 명료하다. 꺾여 버린 조선 청년의 꿈들을 비극적으로 그리며 더욱 시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괜히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아래 예그린어워드)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된 게 아니다. (정작 한 개도 못 탄 점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다. 대체 왜!)

김재범의 홍종우 일본을 거쳐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홍종우는 행복한 삶을 산다. 커피향 나는 이곳에서 그는 자유와 평등을 만끽한다. 그러나 한구석에는 계속 조선에 대한 갈망이 있다. 조선은 과연 프랑스처럼 자유와 평등이 꽃피는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곳은 정녕, 갈 수 없는 나라일까.
김재범의 홍종우일본을 거쳐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홍종우는 행복한 삶을 산다. 커피향 나는 이곳에서 그는 자유와 평등을 만끽한다. 그러나 한구석에는 계속 조선에 대한 갈망이 있다. 조선은 과연 프랑스처럼 자유와 평등이 꽃피는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곳은 정녕, 갈 수 없는 나라일까.곽우신

물론, <곤 투모로우>도 찬찬히 뜯어보면 곳곳에 단점이 있다. 별다른 변주 없이 일관되게 직진하는 극의 톤은, 자칫 이 극을 단조롭고 지루하게 비칠 여지를 준다. 캐릭터별 비중의 설계도 아쉽다. 굳이 트리플 캐스팅까지 한 '와다' 역의 경우 극이 끝날 때까지 별 존재감을 내비치지 못하며, 그저 전달자로서 잠깐 기능할 뿐이다. 특히 시대의 혁명을 그린 작품에 별도의 이름을 갖고 활약하는 여성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엄 상궁이 호명되는 건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곤 투모로우>는 이런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다. 예그린어워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강필석(관련 기사: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비참했던 최후와 남겨진 메시지)을 필두로, 배우별로 자기만의 인물을 만들어가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덕분에 배우별 다양한 페어 조합을 통해 관객만의 재미 찾기에 일조했다. 배우의 열연은 묵직한 선율 그리고 호소력 짙은 가사와 맞물려 대체 불가한 <곤 투모로우>만의 아우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도라지'는 아래로부터의 국민들이 시작하는 혁명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국민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기우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지나 연출,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로그램 북 'Special Interview' 중에서

무엇보다 시대적 맥락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오태석의 원작 <도라지>를 바탕으로, <곤 투모로우>는 가버린 내일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는 청년들의 꿈을 보여준다. 어두운 시대 탓에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만 했던 그들. 산화를 각오하는 청춘들의 비장미가 남다르고, 2016년 오늘에도 적용 가능한 암울한 정치사회적 상황이 또 다른 울림을 자아낸다.

갈 수 없는 나라, 가본 적이 없는 나라

"무엇이 그 빛을 꺾었나. 무엇이 그 길을 막았나. 삼일 겨우 삼일만 허락된 꿈. 이리도 원하는데 갈 수 없는 나라. 빛나는 아침을 함께 할 그 날이 언젠가 오려나. 그 날이 오려나. 닫힌 문을 여는 두 손. 갈 수 없는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1막 No.07 '갈 수 없는 나라' 중에서

역사와 달리 <곤 투모로우> 속 청년 홍종우는 김옥균에게 희망을 품었다. 그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김옥균은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그 세상은 갈 수 없는 나라라며 한탄한다. 그렇게 좌절했던 홍종우를 일으켜 세운 게 바로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 만난 홍종우는 오히려 김옥균에게 감화되어 그를 따른다.

망설이는 종우 옥균의 암살을, 종우는 망설인다. 그 역시, 옥균에게 새 날의 희망을 봤던 여러 청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다르지만, 누아르라는 장르 안에서 이들의 의기는 뜨겁게 융화된다.
망설이는 종우옥균의 암살을, 종우는 망설인다. 그 역시, 옥균에게 새 날의 희망을 봤던 여러 청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다르지만, 누아르라는 장르 안에서 이들의 의기는 뜨겁게 융화된다.곽우신

다시 한 번, 희망을 거짓 밀서를 통해 김옥균을 꾀어내는 홍종우. 김옥균은 청나라로 가는 배를 타며, 한 번 더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해 한다. 희망에 가득차 있는 옥균을 보며 종우는 내심 괴로워한다. 하지만 정작 선택의 순간에서, 옥균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다. 자신의 뜻을 종우가 이을 것이라 믿기에.
다시 한 번, 희망을거짓 밀서를 통해 김옥균을 꾀어내는 홍종우. 김옥균은 청나라로 가는 배를 타며, 한 번 더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해 한다. 희망에 가득차 있는 옥균을 보며 종우는 내심 괴로워한다. 하지만 정작 선택의 순간에서, 옥균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다. 자신의 뜻을 종우가 이을 것이라 믿기에.곽우신

실상 인류는 단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다. 모두가 자유롭고,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 그런 나라는 사상가가 쓴 책에 혹은 혁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다. 비단 1884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종우가 그렇게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는 르펜의 극우정당이 선전하고 각종 테러가 자행되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의회주의가 꽃폈던 영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 건 1928년이었고, 그렇게 넓어진 투표권은 '브렉시트'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토크빌이 깊이 매료되어 그 장단점을 상세히 파헤쳤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9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듯이.

"끝이 아닌 시작, 또 새벽은 열리고 다시 시작될 꿈이여. 빛이 보인다, 내 두 눈에. 가슴이 뛴다, 내 심장에. 또 다른 시간, 죽어 얻는 삶 빛을 향하여. 다시 얻는 삶 빛을 향하여."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19 '죽어 얻는 삶' 중에서

김옥균은 말한다. 나면 어떻고, 너면 어떠냐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온다면, 그 내일이 가까워지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홍종우가 대신 이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시체라도 딛고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

"빛 사라져도 난 마지막 꿈을 꾼다. 빼앗긴 이 땅에. 두 발을 딛고서. 내 몸이 사라져 대지 위에 지고, 내 몸이 피 흘려 저 산 아래 져도. 난 도라지 꽃 뿌리 되어 꽃 피우리. 삼천리 강산에 새 하얀 꽃. 그 하얀 꽃이 온 세상을 뒤덮을 때, 날 데려가라 그 곳으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4 '돌아올 수 없는 길' 중에서

새 날을 꿈꾸던 혁명의 의지. 그 빛나던 의지는 홍종우에게까지 전해지고, 함께 뜻을 모은 동지들에게도 전달된다.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좀 먹는 이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김옥균의 의지를 잇기 위해 허우적거려도, 이미 멸망의 늪에 빠져버린 국가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정부를 장악한 이완 총리는 고종의 손발을 묶고, 헤이그 특사 파견과 아울러 작전을 수행하던 동지들의 목숨도 끝나고 만다.

"세상 끝에 몰린 절망, 의미 없이 끝난 죽음, 부질없이 끝난 몸부림. 마지막 한 서린 통곡.  대답 없이 끝난 절규. 부질없이 흘린 피눈물. 온 세상 뒤덮인 통곡. 세상 끝난 날. 이 하늘 닫혀 끝난 날. 어디로 가야 하나. 무너져가는 세상 이제 어디로 가나."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6 '어디로 가야 하나' 중에서

이완 총리를 제거하기 위해 홍종우는 목숨까지 버렸지만, 결국 그 탄환은 이완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그렇게 홍종우의 눈 안에서 반짝이던 빛도 그의 목숨과 함께 점멸한다.

우리 비록, 또 실패할지라도...

김무열의 홍종우 제주목사가 된 이후 동지들과 함께 고종의 뜻을 받드는 종우. 그는 친일파를 암살하고, 조국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이완의 사살에 실패한다. 왕은 타의에 의해 또 한 번, 자신을 믿는 이들을 배신했다.
김무열의 홍종우제주목사가 된 이후 동지들과 함께 고종의 뜻을 받드는 종우. 그는 친일파를 암살하고, 조국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이완의 사살에 실패한다. 왕은 타의에 의해 또 한 번, 자신을 믿는 이들을 배신했다.곽우신

옥균의 사당 앞에서 홍종우가 결국 실패했음을, 이완이 살아있음을, 조선의 명운이 다했음을 알리는 와다. 김옥균의 영은 와다의 이야기를 듣고 씁쓸해한다. 동시에, 좌절하지 않는다. 도라지꽃이 피어날 그때를,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
옥균의 사당 앞에서홍종우가 결국 실패했음을, 이완이 살아있음을, 조선의 명운이 다했음을 알리는 와다. 김옥균의 영은 와다의 이야기를 듣고 씁쓸해한다. 동시에, 좌절하지 않는다. 도라지꽃이 피어날 그때를,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곽우신

이완으로 상징되는 거악은 지금도 현재 권력으로 실존한다. 우리는 제2, 제3의 이완이 청와대에서, 국회 의사당에서, 재벌 총수의 비밀 사택에서 숨 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스팔트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촛불은 물대포에 의해 꺼지고, 투표로 모인 우리의 뜻은 한순간에 사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오는 12일에 광화문 광장으로 집결할 의지도, 저 거악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고야 말겠다는 외침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살을 찢고 내 피를 삼켜 다시 살아라 이곳에. 하얀 빛 구름 하얀 옷 사람들 함께 난 죽어서도 비 되어 다 뿌려지리. 흩어져 버려진 내 몸 이곳에 오게 하리. 조각난 내 뼈와 살 다시 날 살게 하리. 푸르런 하늘 푸르런 물결 속에서 난 내 뼈와 살, 내 뼈와 내 핏물 흘리리라. 흘려서 비 되어 살아나리. 그곳에서 난 다시, 다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7 '저 바다에 날' 중에서

그런데 이상하다. 홍종우의 죽음을 전달받은 김옥균의 혼은, 좌절이나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극을 닫는 노래는 '내일은 없다 리프라이즈(Reprise)' 같은 곡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피어나리라고, 살아나리라고 다짐하는 극의 마지막 노래는 오히려 희망과 환희로 차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국권이 침탈되고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넘어간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한다. 하지만 36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싸워 온 이들이 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광복을 맞이한다.

역사는 무수한 실패의 반복 속에 작은 성공이 켜켜이 쌓이며 진보한다.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부정선거는 혁명으로, 겨울공화국은 봄으로, 군부의 잔재는 민주정부의 탄생으로 맞부딪혀 싸웠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는 사이에 시계는 때때로 거꾸로 흐르지만, 그만큼 다시 앞으로 전진할 기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건 좌절이나 절망, 냉소와 포기가 아니다. 비록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정변을 일으키고, 내 목숨 버리더라도 저 잘못된 거악을 향해 뜨거운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이 땅에 도라지를 심는 일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그 도라지들의 흰 꽃이 만개할 날은 오고야 만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실제로 하야하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옥균이 태웠던 그 빛나는 의지가 홍종우에게, 독립열사에게, 민주투사에게 이어진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와 있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라지를 심는 일일 것이다. 아니, 우리가 도라지가 되는 것이다. 거리로 나서는 우리 하나하나가 곧 피어나고야 말 도라지가 될 테니.

밤이 어둡다. 날이 춥다. 하지만 새벽은, 오고야 만다. 빼앗긴 들판에 봄은 반드시 온다. 김옥균을, 홍종우를, 더는 외롭게 두지 말자.

강필석의 김옥균 갑신정변은 실패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청년들의 꿈도 끝났다. 그렇다고 그 꿈이 잘못된 것은 아닐 거다. 민중의 도움 없이 성공하는 혁명은 없다. 또 하나의 혁명이 눈앞에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도라지가 되어줄 때이다.
강필석의 김옥균갑신정변은 실패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청년들의 꿈도 끝났다. 그렇다고 그 꿈이 잘못된 것은 아닐 거다. 민중의 도움 없이 성공하는 혁명은 없다. 또 하나의 혁명이 눈앞에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도라지가 되어줄 때이다. 곽우신


곤투모로우 김옥균 홍종우 고종 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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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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