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다리와 세 번의 폭발은 인류의 역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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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많은 상징이 쏟아지는 건 열차가 예카테리나 다리를 통과하기 전후, 물 공급 칸 앞칸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다. 요나에게는 앞칸의 상황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투시력인 줄 알지만, 트레인 베이비(열차에서 태어나 땅을 못 밟아본 신인류)이기 때문에 청각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나가 전투가 벌어지기 전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찰나.
간발의 차이로 남궁민수가 문을 열어버리고, 꼬리 칸 사람들은 도끼와 창으로 무장한 십자군 같은 복장의 괴한들과 마주한다. 그런데 이 괴한들은 전투를 치르기 전 웬 물고기의 배를 가르는 의식을 치른다. 나중에 물고기는 수족관 칸에서 스시로도 등장하는데, 수족관의 생태계 균형이 최적으로 맞아떨어질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따라서 물고기는 '균형'을 상징한다. 이처럼 열차 내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소품은 하나도 없다. 전쟁은 많은 희생을 동반하지만(물고기의 배를 가르는 의식), 결과적으로 인구수를 줄여(스시가 된 물고기) '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결말에서도 커티스가 주동한 혁명도 결국 윌포드의 빅 픽쳐(큰 그림)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커티스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어쨌든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중, 승무원이 뜬금없이 "승객 여러분, 예카테리나 다리를 통과합니다!"라고 말한다. 괴한들은 전투를 멈추고 갑자기 "10, 9, 8, 7..." 카운트를 한다.
그리고 "해피뉴이어!" 하고 외치더니 꼬리 칸 승객들도 환호성을 지른다. 그 뒤에 산사태로 무너져 선로까지 침범한 얼음덩어리를 열차가 통과해야 하는 위기가 닥친다. 딱 세 번. 산사태가 났다는 것은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열차가 계속 운행을 해야 할 당위성도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열차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면, 세 번의 충돌은 '1차 대공황' '2차 대공황'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때 사람들은 꼬리칸, 앞칸 할 것 없이 웅크려 열차가 무사 통과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해 하고, 오직 남궁민수만 똑바로 서서 창밖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이 기존의 틀 안에서 경쟁하지만 결국 그 틀을 벗어날 생각은 못(안) 하기는 똑같다는 현실을 풍자한 듯 보인다. 한편 예카테리나 다리를 무사히 통과한 후, 다시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때 영국 영어를 쓰는 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가 등장한다.
그리고는 꼬리 칸 사람들에게 "너희들 중 74%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앞칸 괴한들이 일제히 야간 투시경을 쓴다. 꼬리 칸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남궁민수가 커티스에게 다가와 "너네 완전 X됐다. 이 꼬리 칸 촌놈들아. 원래 예카테리나 다리 지나면 긴 터널이 나와"라고 알려준다. 이 장면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3세계 침략을 의미한다. 제3세계 국가들은 제국주의 침략 당시 근대 문물에 어두웠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무리한 해석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야간 투시경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앞선 '기술', 또 그 기술을 통한 '무기체계'를 상징하고, 긴 터널이란 '침략과 착취'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란 '선택과 집중'을 기본 속성으로 갖는다. 더 많은 경제적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우수한 집단을 택해 자원을 몰아줘야 효율적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자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내수 시장을 장악하고 착취가 거의 이뤄지면, 해외 식민지로 눈을 돌린다. 왜 경제 위기 이후 이런 일들이 생길까.
노동자는 단순히 노동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상품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자를 착취하면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쌓이게 되고, 그 결과 기업도 도산하고 다시 노동자가 직장을 잃는 연쇄적인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 위기를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만 넘기면 다시 침략과 착취를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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