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독했어야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그녀의 삶을 아르바이트로 가득차게 만들었을 돈이었다. 인생을 바꿔줄만큼의 돈이 아니라 숨막히는 대출금의 압박을 줄여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SBS
<상속자>들에 출연한 참가자들은 본인의 이름과 직책을 내려놓고 닉네임만을 사용하여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였다. 다만, 시작할 때 선택한 수저에 따라서 계급이 정해지게 되었다. 금수저를 뽑은 이는 상속자가 되어 많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며 집사에게는 나름의 혜택이, 그리고 정규직에는 괜찮은 집이 마련되었다. 제일 아래에 있는 비정규직은 허름한 집에서 허름한 식사를 해야만 했다.
'샤샤샤'는 이 중에서 정규직의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득권층 연합에서 2번째로 상속자에 내정 받고 2대 상속자가 될 수 있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것 같아 보이고, 순진해 보여 비정규직 연합에 동맹 제안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상속자가 되자 특별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녀는 방값을 엄청 올리기 시작했다. 1개의 코인만을 받았던 초대 상속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 1대 상속자인 '선수'는 대부분 사용요금을 1코인으로 하면서 선심성 정책을 펼쳤었다. 그에 비해 정규직의 방은 5개, 비정규직은 2개를 걷어내는 '샤샤샤'에게 정규직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특별한 행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상속자>에서는 상속자가 변경될 때 이전 상속자의 재산의 절반을 넘겨주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우승을 노리는 '샤샤샤'에게 어렵게 벌어들인 코인의 절반을 넘겨주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녀는 코인의 교환이 가능한 룰을 이용해서 코인을 빼돌리게 된다. 조세회피처로 쓰인 '네버다이'는 그녀에게 약속대로 코인을 다시 돌려주었고 그녀는 단 두 개의 코인만 다음 상속자인 '불꽃남'에게 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네버다이'에게 수고비로 13개의 코인이 넘어갔다)
코인을 뺏기지 않고 많이 가지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은 독해 보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에게는 '폭군'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하고 '배신자'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평균 여대생인 그녀는 어째서 사람들의 원망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독해져야만 했을까. 그녀는 대한민국 평균 여대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슬픈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샤샤샤'는 20대 중반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그녀의 삶은 흔히들 생각하는 발랄하고 웃음이 넘치는 삶과는 달랐다. 복리로 쌓여가는 학자금 대출은 그녀를 끝없이 괴롭혔고,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쉴 틈이 없었다. 골프장 아르바이트, 경기장 아르바이트, 뷔페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그녀는 중간에 빈 시간마저 단기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 돈을 벌었다.
인력시장을 전전하며 톱질까지 마다치 않던 그녀가 갚을 수 있었던 돈은 1500만 원, 3000만 원의 빚 중에서 절반이 되는 돈이었다. <상속자>의 우승상금은 1000만 원이었기 때문에 우승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남은 500만 원을 더 갚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은 500만 원을 기쁘게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녀가 독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그녀의 삶을 아르바이트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 돈이었다. 인생을 바꿔줄 만큼의 돈이 아니라 숨 막히는 대출금의 압박을 줄여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녀가 독한 마음을 품기에는. 더욱 안타까운 것은 평범한 여대생이라는 설명처럼 빚에 허덕이는 것이 그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인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졸자 10명 중에서 8명은 학업을 이유로 대출을 받아야 했고 평균 대출금이 1471만 원이라고 한다.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 대학보다 저렴한 등록금이지만 매번 등록금 납부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나오곤 한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지급되는 국가장학금은 매번 이해하기 어려운 소득분위가 선정되면서 소량의 금액만이 지급되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기도 했다. 등록금을 힘들게 마련하고 나면 생활비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학기 중에도 병행해야 했고 그것은 결국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되자 성적은 당연히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그로 인해 장학금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렇게 악순환은 반복되고 꿈이나 하고 싶은 일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입에서는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라는 발언이 나오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독기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학업을 하기 위해서는 독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고, 조금이라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독하게 남들과 경쟁하며 이겨야 했다. '샤샤샤' 그녀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독해지는 것은 그녀에게 필수적이었다는 말이다.
평소 즐겨보지 못했던 호화스러운 요리를 먹으며 행복해하고 침대에 누워 잠시나마 누리는 권력의 맛을 느껴보는 그녀에게는 탐욕보다는 순진한 미소가 빛났다. 영악하게 코인을 다량 얻어냈던 그녀에게 보이는 것은 욕심보다는 사람답게 살고 싶은 절실함이 더욱 느껴졌다. 굶을 자신이 있다던 그녀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외침이고 현실이었다.
결국 변한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