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넛의 생각블랙넛의 음악에는 여성에게 뒷통수를 맞았다는 식의 남성중심적 상황해석이 반복적으로 재연된다(<쇼미더머니4> 러브라인, '배치기' 가사 등). 또한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개념녀'와 '비개념녀'를 나누고 후자를 혐오하는 일베발 용어인 '김치녀'도 가사에 등장했다('Indigo Child'). 블랙넛이 일베 활동 전력이 있다는 건 기정사실화 됐지만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연구나 취재 목적으로 일베 계정을 갖고 가끔 글을 남겨 반응을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율
데이터 분석 기업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의 <2014년 일베 연구 논문(사회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으면 울분을 느낀다. 하지만 울분을 호소하는 대부분은, "안 힘든 사람은 없다"는 평범서사의 메아리가 주변을 맴돌 때 순응주의 압력을 받는다. 블랙넛 역시 서비스업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란 데다가 친구들과 정서적 지지 관계를 형성하지 못 해 감정 응어리가 켜켜이 쌓인듯 보였다.
문제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으며 단지 증상만 바뀌어 분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일베의 경우, 겉으로는 친절을 꾸미고 자기계발론에 매진하는 착한 청년 콘셉트를 잡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스스로 '일베충' 콘셉트를 잡고 응어리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보고된다. 강자에게 수직적 분노로 향하지 못 한 감정이 인터넷에서 수평폭력의 파편으로 전도되는 것이다. 타깃은 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들이나, 어떤 진지한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진보·좌파 등이다.
오찬호의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따르면, 순응주의를 체화하면 객관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한 고통이라는 주관적 심리상태를 마치 비교가 가능한 것처럼 오인한다. 인고에 대한 보상심리에 눈이 멀 때, 사람들은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모순과 사람들의 고통을 직시하지 못 하는 '구조맹인'이 된다. 혹은 수직적 분노를 분출해 승리해본 역사적 경험이 없으니, 이들의 눈에는 어떤 진지한 이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 삶과 어긋난 우스운(가식적인) 부류처럼 보이게 된다.
한국 힙합 1세대 메타는 지난해 8월 <뉴스타파>와 함께,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가 많아도 함구한 채 사행성 경쟁과 약자 혐오의 모습을 보이는 힙합 신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러자 블랙넛은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서 "네가 걱정하는 건 추락하는 네 위치지 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라는 가사를 썼는데, 이 대목은 메타를 겨냥했다는 게 힙합 신의 정설이다. 진지한 이상을 좇는 메타를, 자기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가 없으니 메타 역시 지질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재해석한 셈이다.
블랙넛의 권력은 '열등감'에서 나온다흥미로운 건 블랙넛이 현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일상에서 보통 지질이는 약자이고 무시받기에 열등감을 느끼는 이미지다. 그런데 일베와 블랙넛은 기꺼이 자신들을 지질이라고 부르며 열등감을 오히려 권력으로 행사한다.
단적인 예로, 블랙넛은 '열등감'이라는 곡에서 래퍼와 리스너들을 '광역 디스(폭넓게 공격함)'하며 체면을 깎아내렸다. 이어서 "내가 네 머릿속에다가 질투란 걸 심을거니까, 당해봐, 나와 똑같은 감정 (중략) 난 열등감만 가득찼어"라 덧붙이며, 열등감으로 힙합 신을 평정하겠다는 근거 없는 스웨그(자기 허세)를 부린다.
이런 식의 독특한 '열등감-스웨그' 코드는 블랙넛 음악 전반에서 발견된다.
▲블랙넛의 음악적 관계도파란색점은 같은 소속사 저스트뮤직 멤버들. <쇼 미 더 머니> 프로듀싱 및 랩, 작곡, 피쳐링, 믹스, 마스터, 녹음 등. '블랙넛'이 음악적으로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거나 관여받은 뮤지션들과의 관계 1회당 화살표 굵기 1씩 계산해 노드엑셀로 시각화했다. 평소 '나는 모든 체계가 싫다'며 해체주의 성향을 보인 천재노창의 영향력이 눈길을 끌었다('자유해방' 'Indigo Child').
하지율
빈지노·이센스 등 유명 래퍼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자신이 더 우월해질 거라는 노래 '빈지노' '하이어 댄 이센스(Higher Than E-Sens)'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엄마 빚 갚아야 하니 래퍼들은 어서 밥그릇들 치우고 나를 '갓대웅'이라 경배하라"는 노래 '100' 등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블랙넛의 페이스북 팬 페이지 팔로워는 약 16만 명에 이르며 블랙넛은 많은 팬들로부터 '갓대웅'이라 찬양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열광이 가능한 걸까. 그것은 블랙넛이 일종의 '공동체의 확장'을 대리수행하는 선봉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이길호에 따르면, 인터넷 누리집의 '페이지(page)'는 원래 영토라는 의미의 '파구스(pagus)'에서 유래한 단어다. 그리고 블랙넛은 이 파구스를 확장시킨다.
"나는 이상(idea)처럼 일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나는 일상에서 존재하는 방식대로 인터넷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나는 인터넷에서 존재하는 방식대로 '힙합 신에서도' 존재한다."이런 식의 영토 확장은, '인터넷' 뿐 아니라 '힙합 신'에서도 '모두가 평등한 지질이'라는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자' 블랙넛과 같은 극소수를 부각한다. 특히 스스로를 '일베충'이라 부르며 동물화하는 일베가 '갓대웅'으로 신성화한다. 물론 이런 '신성함'의 자질은 하루이틀 사이에 얻을 수 없는데, 실제로 블랙넛이 7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는 건 인터넷 문화를 이해할 시간도 많았다는 뜻이다.
가령 블랙넛의 곡 '가가라이브'에서는 블랙넛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블랙넛이 자신의 성기 사진을 찍어 올려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내용이다. 2000년대 중후반, 디시의 '너도 나도 평등한 개념인'이라는 구호가 '너도 나도 평등한 병X(지질이)'라는 구호로 변질되며 한때 유행한 '관심병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관련 기사:
2010년 이미 예견된 일베의 탄생).
2010년대 '디시'나, 현재의 '일베' 유저들은 일상적인 도덕 관념으로 각자의 문화가 비판받는 걸 꺼린다. 오히려 '디시는 원래 이러고 노는 곳이다'(이길호 <우리는 디씨>) '일베는 원래 이러고 노는 곳이다'(박가분 <일베의 사상>)라는 말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규정하며 서로를 까내리는 걸 즐거워한다.
이런 정체성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일상으로 확장 중이다. 힙합플레이야나 힙합 카페에서 <쇼 미 더 머니>나 블랙넛의 선정성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나 심심찮게 "예능인데 뭐 어때요", "그런 게 리얼 힙합이지" 심지어는 "진지충 납셨네"라는 댓글들이 꾸준히 달린다.
현재 블랙넛에 대한 열광을 제국주의적 현상으로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이곳은 원래 모두가 지질이처럼 굴어도 되는(심지어 굴어야 하는) 곳"이라는 사상은, 이질적인 생각들과의 소통과 이해를 거부한다. 동시에 다른 문화적 영토들을 하나씩 점령하는 이중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희생자는 여성
▲블랙넛의 '펀치라인 애비 2' 가사 중.
하지율
정리하면 일베의 사상은 확장 중이고 그 최전방에 블랙넛이 서있다. 그리고 블랙넛과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희생자는 다름 아닌 여성이다.
블랙넛의 곡 '배치기'에는 여성과의 데이트 좌절 경험이 등장한다. 힙합 동아리에 평소 호감이 있던 여성이 있었고, 해당 여성이 좋아하는 힙합 듀오 배치기의 노래를 부르며 관심을 끌었는데 다른 남자와 잘 되더라는 아쉬움이 곡의 전반적 정서다. 그런데 정규 1집 <ㅍㅍㅍ> '펀치라인 애비 2'의 가사 도입부는 "나는 한국 힙합 정상을 먹을 건데 걔가 아직 붙어 있길 바래 처녀막이 내가 가서 안에 쌀 거지"라는 충격적인 말부터 꺼낸다.
일종의 선전포고랄까. 여기서 "걔"가 '배치기' 가사 속 여성과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곡 제목 '펀치라인'이 중의적 표현을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랩스킬을 뜻한다는 점에서 은유적이다. 실제로 동일 인물이 아니더라도, 블랙넛 음악은 진실한 사랑과 여성혐오 정서 사이의 혼란스러움이 반복적으로 관측된다.
가령 '8만원'의 가사에서는 '아다(성관계를 한 번도 못 해본 남성)'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성매매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욕구를 채우긴 아깝지 (중략) 난 원해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과 함께 발걸음을 돌리는 결말로 끝난다.
그의 음악 대부분에서, 여성은 꾸준히 욕설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지면에 다 옮기기에 수위가 심각할 정도이다. 가령 '펀치라인 애비 2'에서 디스 상대방의 엄마와 여동생의 성기를 언급하거나 임신시켜 버리겠다('생리를 멈추게 하겠다')고 하는 등, 여성을 차별적 맥락에 등장시키는 전형적인 혐오 정서가 뚜렷했다.
여성학자 윤보라의 "일베와의 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건 여성"이라는 논문 내용(<일베와 여성혐오>), 아르스프락시아와 <시사인>의 "젊은 남성의 여성혐오는 데이트 좌절 경험을 원체험으로 가져가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는 혼란스러움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관련 기사: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
[첨언]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굳이 '지질이'가 될 필요가 있을까? |
블랙넛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혼란을 꾸준히 음악적으로 전시하고, 일베는 초월적 위치에서 이를 내려다보며(아마도 스마트폰과 모니터 액정으로) 이에 동조하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의 태도는 '구조맹인'이 됐기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어렵고, 진지한 이상을 작게나마 현실에 실현시켜본 기회도 없는 많은 청년들에게 깊이 체화된듯 보인다.
이들에게 익숙한 평등이란 모두가 지질이로 추락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추락이 허용되는 영토가 일베를 넘어 힙합 신까지 확장될 때, 블랙넛은 무한한 자유의 상징 '갓(God)'으로 찬양받고 대중은 'ㅇㄱㄹㅇ(이것이 리얼이다)'를 외칠 뿐이다. 하지만 이게 진정한 자유일까. 블랙넛과 일베의 사상대로 인간은 누구나 지질한 본성이 있다. 다만 솔직함과 진정성은 엄연히 다른데 진정성이 없는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일베와 블랙넛은 다른 한 켠의 인간 본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 역사책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숭고한 가치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추구하고 현실화시켜 온 사실도 어쨌든 존재한다. 문제의 본질은 블랙넛과 일베가 영토 확장 과정에서 대중을 지질이로 일방통행처럼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성의 결핍이고 삶의 리듬감 상실인데, 아쉽게도 블랙넛과 일베는 이런 삶의 리듬감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고 어떤 진지한 이상을 삶에 기획투사하는 것도 인간성의 일부분이다. 블랙넛과 일베가 솔직함과 진정성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인간이 진정성이 있고 자유롭다면 굳이 지질이로 추락하는 것만을 "리얼 힙합"('Part 2')으로 여길 이유는 없다.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6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공유하기
블랙넛, 일베 제국 확장의 최전방에 서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