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분위기>의 한 장면
쇼박스
논란 이전에 영화를 관람한 관객으로서, 이 영화에 대해 여성 혐오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황당하다. 영화 전체로 보면 <그날의 분위기>는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멜로나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치를 완벽히 만족시키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선정적으로 빠지기 쉬운 원나잇스탠드라는 '어려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여성을 객체화시키지 않고 줄거리를 끌어가는 지점이 이 영화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미덕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해진 대사인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라는 재현(유연석 분)의 대사는 그 대사 하나만 놓고 보면 성희롱이 맞고 또 영화 전체를 그렇게 보이게 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일단 해당 대사만 놓고 보자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것도 기차 옆 좌석에 우연히 앉은 처음 본 이성에게 저런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식적인 상황에서라면 그런 말을 꺼낸 남성은 뺨을 맞거나 최소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분위기>는 원나잇스탠드라는 사건이 있기 위해서 필요한 상호 간의 동의와 감정 변화와 같은 조건들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원나잇스탠드를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해버리는 데서 끝내지 않는 것이다. 영화 속 재현(유연석 분)이라는 캐릭터가 비록 '저 말도 안 되는 성희롱적 대사'를 수정(문채원 분)에게 던지기는 하지만,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그 장면이 오히려 영화 흐름상에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재현은 수정에게 원나잇스탠드를 제안하지만 요구하거나 강제하지 않으며, 섹스를 통해 얻는 쾌락을 목적으로 삼고 목적지향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정을 향한 그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그녀의 감정을 거의 완벽하게 배려하는 남성으로 그려진다. 재현 캐릭터의 이러한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수정이 원나잇스탠드에 동의한 후 이어지는 호텔 장면에서다. 원나잇스탠드를 결심한 수정이 육체적인 관계를 빨리 끝냄으로써 일탈로 인한 죄책감이나 힘든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 조급한 행동을 보이는 반면, 재현은 오히려 지금 자면 안 될 것 같다는 감정을 느끼고 스킨십 '진도'를 나가는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난다.
<그날의 분위기>는 남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원나잇스탠드 성공 후기'가 아니라, 여성의 관점까지도 포괄하여 만들어진 '멜로 영화'에 가깝다. (그것이 성공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원나잇스탠드라는 조금은 특별한 사건 속에서 변화하는 남녀의 세밀한 감정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왜 이 영화가 여성 혐오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여성 중심의 서사를 그려낸 영화인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평론을 쓰고 있다(관련 글:
우리가 비록 유연석·문채원 같은 선남선녀는 아닐지라도). 그는 "<그날의 분위기>는 재현이 아닌 수정을 주어에 놓으면서, 정체되었던 자신을 딛고 새롭게 도약하는 여성의 성장을 보여준다"고 언급하면서,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과 다른 '성 정치학적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는 연애를 그려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 웬만하면 오늘 그쪽이랑 자려고요"라는 대사에 대해서도 "모호한 감정을 내세우면서 지분거리는 게 아니라, 명쾌한 요구와 함께 분명한 동의를 구한다"는 면에서 "신선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황진미는 지금까지 여성혐오의 혐의가 있다고 생각한 영화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하는 평론들을 써왔다. 특히 2015년 개봉한 이광수, 박보영, 이천희 주연의 블랙코미디 <돌연변이>의 주진(박보영 분) 캐릭터에서 여성 혐오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관련 글:
'돌연변이', 아버지 세대의 닦달에 대한 청년의 응답).
그렇다면, 실제 영화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어난 것일까?
초점이 어긋난 논란의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