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의 한 장면. 실제 역사에서도, 일제는 군 병력과 조선 사냥꾼을 앞세워 조선의 호랑이들을 소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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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한 동물의 왕, 지리산의 군주 대호가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다. 대호의 격렬한 저항은 일본 군대를 궤멸시키다시피 하지만, 대호 역시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제 대호도 돌이키기 힘든 지경에 이른 자신의 운명을 자각한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는 조선 최고의 마지막 명포수 만덕의 총에 죽기로 결심한다. 물론 만덕도 자신의 총으로 대호를 안락사 시키고, 대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대호가 자신에게 달려들게 유인하여 함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만덕과 대호는 무자비한 일본군대와 비열한 포수들의 총구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들만의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본 군대에 의해 강토가 유린당한 조선과, 호랑이 사냥과정에서 처자식을 잃은 만덕, 그리고 인간들에 의해 배우자인 암컷과 새끼를 잃은 대호는 동일한 처지다. '조선=만덕=대호'의 3자는 서로 동일시할 수 있는 심리학적 등가물(Psychological Equivalent)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꿈은 개인의 신화요, 신화는 집단의 꿈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융의 말을 빌자면 영화 <대호>는 우리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조선 호랑이에 대한 한민족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의만족의 웅혼한 기백과 자긍심을 조선 호랑이에게 투영시킨 영화 <대호>의 스토리는 바로 우리민족의 전설이요 신화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족1 : 나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대호와 만덕을 보면서 문득 명성황후 민씨와 매천 황현과 민영환이 차례로 떠올랐다. 잘 알다시피 명성황후 민씨는 궁에 침입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를 당하면서도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며 장렬한 죽음 맞았다. 민영환과 매천 황현 역시 각각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설움을 자결로 마감한 우국지사들이 아닌가.
사족2 : 대호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굶주려도 풀은 먹지 않는다.'는 맹호의 기상을 떠올렸다. 영화 속의 대호처럼 실제로 현실 속의 '호랑이는 죽을 때도 서서 죽는다'고 한다. 죽을 때조차 서서 죽는 조선 호랑이의 의연한 기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 <관상>에도 나온다. 이방원(이정재 분)이 보낸 자객의 철퇴에 맞아 절명하는 김종서(백윤식 분) 장군의 모습을 한재림 감독은 포효하며 서서 죽는 호랑이의 죽음에 비유하여 인상적으로 잘 영상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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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역임. 융합심리학연구소장(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현)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