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작업실 속 이동준 작곡가 모습.
고동완
그는 첩보물에서부터 멜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 속 명곡을 만든 주인공이다. 한국 영화 음악계의 거장이라도 불러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 24일 이동준 작곡가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 <태극기 휘날리며> OST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여러 명곡을 만들어냈다. 음악들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우선 영화 편집본을 2~3번 반복해서 봐요. 음악이 들어가고 나가는 장면을 살펴보고, 5초가 됐든 4분이 됐든 장면들을 체크합니다. <장수상회> 같은 경우 38번 정도 음악이 들어갈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그럼 그 지점을 정해놓고 큰 흐름을 보고 (음악적으로) 중요한 순서대로 작업을 해요.
영상을 잘라서 컴퓨터에 올린 후, 피아노로 정리해 봅니다. 영상을 끄고, 머릿속 이미지를 만들어보면서 어렴풋이 테마곡을 만들죠. 나쁘지 않으면 영상에 음악을 붙인 뒤, 박자 등 음악적 기능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요. 그게 완료되면 편곡을 해봅니다. 그렇게 영화 한 편에 40~50분 작곡 분량이 들어가는데요. 심포니 곡을 만들 듯이 작업하는 셈이죠."
- 영화 제작이 완료된 다음,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인물 움직임이 많은 영화는 편집이 끝나야만 작업을 할 수 있죠. <분노의 질주>를 최근에 봤는데 그런 건 미리 곡을 만들어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편집이 끝나고 음악을 맞춰줘야 하거든요. 편집이 달라지면 다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최종본을 가지고 시간에 맞춰 음악을 절묘하게 대응시켜줘야 해요.
<쉬리>는 시나리오를 통해서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한석규, 김윤진)이 긴박하게 뛰어가고, 총구를 맞대는 클라이맥스 상황이 벌어진다는 걸 미리 봤어요. 그 다음 최종 편집본을 가지고 장면을 몇 번 돌려 보면서 '여기서부터 음악이 시작되겠네', '한 음악이 어디서 마무리될까', '김윤진이 죽을 때 음악이 끝나야겠구나'... 변화가 일어날 시간을 다 체크해서 모든 상황과 감정들을 하나로 묶어 (음악으로) 표현했어요. 편집본이 나와야만 가능하죠."
"음악을 잘 만들려면 감성이 열려있어야 한다"이 작곡가는 "작곡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정 이입과 집중을 최대로 높여야만 곡의 완성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음악가는 영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으로, 작품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된다"고 했다.
- 곡이 잘 안 만들어질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속이 터질 때가 많죠.(웃음) 막 머리 쥐어뜯고 그래요. 늘 고민을 하다가 어느 타이밍에 순식간에 풀리는 건데요. 일단 그 작품에 감정을 이입해야만 감성이 올라오거든요. 그게 가득 차면 고민을 조금만 해도 '곡이 나오겠구나' 느껴요. 그 때 초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곡들이 나오죠.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은 곡들은 고민의 시간은 길지만 곡이 빨리 나온 거였죠. <은행나무침대> 음악을 만들 때는 스스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금 악사가 돼서 개울가에서 자연 속에서 춤을 추는 걸 상상해봤거든요.
고민이나 생각을 할 때는 혼자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안 풀리면 내일로 미루기도 하죠. 음악을 잘 만들려면 감성이 열려있어야 해요. 산책을 하더라도, 와인을 마시더라도, 연애를 하더라도 감성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요. 이를 테면 비올 때 막걸리를 마시는데 나한테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게 있거든요. 그게 음악적인 모티브가 돼요. 그런 게 누적이 되면서 사람에 대한 공감이 쌓이고, 곡에 반영이 되는 거죠."
이 작곡가는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곡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