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열린 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이정민
"올해는 부산영화제에게 그 어느 해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최근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가 전한 새해 전망이다. 2015년은 영화제가 20회를 맞이하는 뜻 깊은 해지만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후폭풍이 여전히 감돌고 있어서다.
영화제가 끝난 직후 감사원의 감사와 부산시의 지도·감독(감사)를 연이어 받으면서 부산영화제는 예산지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다른 영화제 관계자는 "우리도 감사를 받았지만 강도가 그리 세지 않았다"며 "부산영화제가 감사의 주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실무 관계자는 "추측성 이야기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부산시청 배경아 주무관은 9일 "올해 예산이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다"며 "영화제 예산이 축소된다는 이야기는 외부에서 근거 없이 떠드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예산은 더 늘어난 것도 없지만 줄어들지도 않았다.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확정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내 영화제들이 10년 단위의 행사에 의미를 두고 특별하게 치른다는 점에서 올해 20회를 맞는 영화제 예산의 증액 아닌 동결은 사실상 보복 성격이 짙다는 시선도 있다. 계획했던 특별 프로그램 등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회 맞는 행사에 예산 동결, 사실상 보복? 국내 영화제들에 다시금 정치적 외풍이 불고 있다.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영화계 좌파들을 몰아낸다며 한바탕 난리를 피운 지 5년 만이다. 그렇다고 새누리당 소속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부산영화제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부산·전주·부천·제천·여성·청소년·DMZ 등 7개의 영화제가 국고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영화제들은 감사원이 국고 지원 영화제들을 모두 감사한 것에 대해 "부산영화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제들을 향한 경고성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영화제들이 정치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잇달아 내 놓은 데 따른 일종의 정치적 압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들 간에 감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감사원이 아무리 예정됐던 감사라고 말해도 의도가 뻔하지 않나,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를 활용할 것이고 이미 결과에 대한 방향은 정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이뤄진 영진위원장과 영진위원 인사는 이런 염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장 영화인출신 위원장을 원했던 영화계의 요구는 무시당했고, 뉴라이트 단체 문화미래포럼 출신 인사가 영진위원에 임명됐다.
문화미래포럼은 지난 2010년 국회에 제출한 문건을 통해 '국내 영화제와 영상위원회 등을 좌파의 근거지'로 주장하며 인적 청산을 요구했던 단체였다. 2010년 촉발된 영화계 갈등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국내 영화제들뿐만이 아닌 영화계가 우려의 시선과 함께 경계심을 갖는 이유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논란 과정에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행사라면 정부 비판 영화를 틀지 말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다. 기본적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인식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예산을 갖고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주요 영화제들은 지금껏 한국영화의 성장과 문화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분위기 속에 영화제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 정권이 대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문화융성' 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 일부 영화계 인사들의 평가다.
겉으로는 문화융성, 속으로는 표현의 자유 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