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스틸컷
영화사 집
이에 아름은 생전 눈길도 주지 않던 게임을 하고, 대수와 미라 앞에서 밥상을 엎는다. 아름의 이 같은 반항이 처연한 까닭은, 그가 게임에라도 몰두하는 척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음을 알기 때문이며,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고, 이 모든 것이 찰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름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수와 바라본 밤하늘이었다. 유성이 떨어지는 밤, 아름과 부모님의 만남 만큼이나 드물고 아름다운 그 밤에 아름은 이번 생에서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르는 꿈을 하늘에 띄워 보낸다.
그리고 아름은 그 자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대수와 미라의 꿈을 다시 묻는다. 그러면서 지금은 대수와 미라의 그 모든 꿈들이 자신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아름은, 자신이 아빠에게 선물한 시(詩) 속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룬 듯도 하다.
"아버지가 묻는다. /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두근두근 내 인생> 중 아름이 대수에게 선물한 시)그러나 한번도 자신을 향하지 않은 적 없던 엄마와 아빠의 시선을 새삼 깨달은 순간, 아름에게 암흑의 시간이 다가 왔다.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게 된 아름이지만, 눈 앞을 메운 어둠 속에도 대수와 미라의 사랑이 별처럼 빛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꼭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짧디 짧은 아름의 삶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대수와 미라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 관계는 때때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간다아름의 몸에 스며든 죽음이 그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그때부터 아름은 더욱 어른이 되고, 대수는 더욱 아이가 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초연해진 아름에 비해, 대수는 떼를 써서라도 그 시간을 늘리고 싶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물론 의사조차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수가 매달릴 곳이라곤 오래전 인연을 끊은 아버지 뿐이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속 비중은 적지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은 대수와 그의 아버지(김갑수 분) 이야기였다. 스물일곱도 아니고, 열일곱이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자식이 덜컥 아이를 만들어 오다니, 부모가 돼 본 적 없는 사람도 그 황당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식이 그런 대책없는 고백을 해 온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대수 아버지는 철없는 자식에게 역정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가만히 맞고 있어 주기를 바랐던 대수는 그길로 집을 나온다.
하지만 대수가 아름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처럼, 대수 아버지도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자식을 없는 셈 치고 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대수가 1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집에는 아름의 이야기가 담긴 자료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름의 후원금 계좌가 적힌 종이를 본 대수는, 실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읽는다. 그러나 대수 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애정의 방향을 고백한다. "그래도 난 내 자식이 더 걱정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