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규 감독은 민영화의 목적이 자본과 권력의 블랙 딜이라고 말한다.
인디플러그
지난해 11월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인들 앞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비공개 연설을 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수에즈 사를 포함한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공공부문의 개방, 즉 민영화를 언급하며 프랑스 기업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약속했다. 이 연설로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훈규 감독은 민영화의 목적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블랙 딜', 즉 자본과 권력의 부당거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영화로 자신의 삶이 파괴되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들은 '블랙 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블랙 딜>은 한국의 '오래된 미래'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자본과 권력의 부당거래, 즉 민영화가 초래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민영화가 초래한 유럽과 남미의 묵시록적 상황은 머지 많아 우리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랙 딜>이 보여주는 미래는 더욱 충격적이다. 담담한 어조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언하는 정태춘의 낮은 목소리는 그 불길한 정조를 더욱 증폭시킨다.
<블랙 딜>은 잘 만들어진 기록영화다. 1년여의 짧은 제작 기간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상당히 완성도 높은 작품을 빚어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저널리즘적 방식에 의존한 것이다. 저널리즘적 화법은 메시지 전달에는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영화적 즐거움이 희생된다.
대한민국을 팔아라이훈규 감독은 정부가 국민의 반대에도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자본과의 부당거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본에 매수된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국가 자산의 매각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놈 촘스키도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블랙 딜'도 민영화의 원인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민영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수정부의 재등장 이전부터 민영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 민영화의 기원은 1997년 IMF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사태 직후인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4개 공기업 가운데 11개를 임기 안에 민영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민의 정부'는 임기 중 모회사 8개를 민영화하고 자회사 66개를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했다. 민영화 지지자들은 김대중 정부를 '역대 정부와 비교해 볼 때 민영화 실적이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역대 정부에는 이명박 정부도 포함된다.
참여정부에서는 단 1건의 민영화 실적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민영화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도 민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민영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속도를 늦췄을 뿐이다. 한미FTA 타결로 전면적인 민영화로 가는 직항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는 가장 결정적인 민영화 실적을 올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민주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시작했다는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정치공세는 흑색선전에 가깝다. 하지만 민주정부들도 민영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보수정부와 민주정부를 가리지 않고 민영화를 추진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IMF사태다. 당시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파산 위기에 놓여 있던 정부는 IMF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IMF개혁의 핵심은 자유화, 개방화였다. IMF가 요구한 금융시장의 개방화, 무역자유화 폭의 확대, 기업경영 투명성 재고,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조치로 한국 경제의 담벼락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 결과 해외투자가 증대되고 지표상의 경기는 회복됐지만,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극적으로 치솟았다. 2012년 현재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무려 96.6%에 달한다.
한국에서의 민영화는 정책적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이다. 보수정부이건, 진보정부이건 대외의존적인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세계화의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전면적인 민영화로 떠밀려가게 될 것이다. 단지 선거만으로는 민영화의 물길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처럼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우리의 불길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