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더 카스바>의 한 장면.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가부장질서로 유지되었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다.
Estrella Productions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아랍의 봄'으로 겨우 시작됐던 민주주의가 다시 군부 독재로 회귀했다는 등의 아랍권 국가 관련 뉴스를 보면서 '저런 데 어떻게 사람이 살지' 하는 생각이 스치곤 했었다. <락 더 카스바>의 장례식 장면을 보면서 전쟁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하고 이별하며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영화의 전개를 이끄는 갈등의 주인공은 아버지다.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다. 그래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모로코만의, 이슬람 가정만의 특별한 고민거리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외국인과 결혼했고, 이슬람에서 금기시 하는 이혼까지 하겠다는 소피아는 가부장적인 이슬람 문화에 순종하는 어머니와 언니를 비난한다.
이런 소피아를 가장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켄자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 선생님이 됐을 정도로 순종적인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 장례식 날 첫 일탈을 감행한다. 태어나 처음 맥주를 마셨고 선생님처럼 보이는 안경을 벗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가부장적 아버지와 자녀간의 갈등이 전개에 주요한 한 축이다. 이 영화를 보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아랍 사람들이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한국과 비슷한 게 너무 많잖아' 하다가도 아랍영화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가족들이 모여 소피아가 출연한 영화를 보는데, 화면 속 소피아는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자폭하는 알카에다가 돼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알카에다를 걱정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피아의 할머니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소피아가 죽은 게 아니냐며 손녀를 찾는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과격분자',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뿐인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가족들은 "미국인은 아랍이라면 무섭다는 생각 먼저 한다"며 불평 섞인 말을 내뱉는다.
<락 더 카스바>는 다큐멘터리처럼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노란색, 분홍색 꽃들이나 여유로운 해변의 풍경을 천천히 비춰준다. 뉴스로 접했던 거칠고 과격한 아랍과는 달리, 그곳의 자연은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워 오히려 낯설다. 우리가 아랍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보고 있는지 일깨운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갈 즈음 아버지의 유서가 공개되고 그의 외도 사실이 드러난다.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가정을 유지하고 이슬람으로서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참았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알게 된다. 소피아는 비난을 멈추고 어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가족의 화해가 갑작스럽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을 보듬는 사람은 아랍이나 한국이나 늘 어머니다.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본다. 행복해하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즐거워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리워한다. 다만 가족들은 자유로워졌다. 켄자는 맥주도 맘껏 마신다. "아버지가 없으니 그러는 거야?"라는 말에 웃음으로 답을 대신할 뿐이다.
아버지 하산이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슬람 문화는 존중하되,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문화가 언젠가는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눈물이 있는 파티로 그린 이유다. 수천 년 이슬람 문화에 대항할 수 있는 현명하고 재치 있는 결말이다.
영화 <락 더 카스바>는 2013년에 시작해 올해로 2회째 맞는 아랍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돼, 서울(2014년 6월 19일~6월 25일, 아트하우스 모모)과 부산(2014년 6월 20일 ~ 6월 26일, 영화의 전당)에서 볼 수 있다. 서울·부산 각각 3회씩 총 6회 상영하고 있으며 <락 더 카스바>를 포함해 총 8편의 아랍영화가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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