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잠재해 있던 오혜원의 욕망은 순수한 영혼 이선재를 만나 불이 붙었다.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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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원과 이선재의 치명적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했지만, <밀회>의 초점을 그것에만 맞추는 일은 여러 모로 온당치 않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경직되고 위선적이며 부패한 뒤안길, 부와 명예의 유무로 고착화되는 사회 계층의 모순에 던지는 문제의식 등이 심도 깊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민으로 포장된 흑심을 한껏 드러내고, 그 대상을 '품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서필원(김용건 분)의 행태, 그의 부인 한성숙(심혜진 분)과 딸 서영우(김혜은 분)의 말초적 신경전도 큰 구경거리이며, 비리 월드의 구심점이라는 음대 학장 민용기(김창완 분),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짜 악기를 팔아먹는 일도 서슴지 않는 김인주(양민영 분)의 활약(?)도 기대되는 바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오혜원의 행보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 또한 위의 사람들 못지않은 속물 중의 속물이기 때문이다. 출세를 위해 철저히 자신을 억누르고, 서필원이 간택한 여성들을 조용히 섭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의뭉스런 인물, 비록 현재 사랑에 빠져 앞뒤 못 가리고 있다지만, 한 차례 욕망이 휩쓸고 난 후에 그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미지수다.
사실은 위선과 탐욕 덩어리인 오혜원이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한 사랑을 좇는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성정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가슴 속엔 일렁이는 야심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야비하고 비굴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찾아온 비련의 사랑? 인지부조화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런가.
하지만 그 사이에서 보이는 묘한 줄타기, 그것이 오혜원이라는 인물을 복합적이며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유다. 순수한 스무 살 청년으로 인해 드디어 분출구를 만난, 걷잡을 수 없게 타오르는 그의 욕망은 그간 한껏 억압되어 있었기에 더욱 인화성이 강하다. 여러 면에서 이선재에게 '갑'일 수밖에 없는 오혜원, 그는 과연 계속하여 일편단심일 수 있을까?
그러나 이선재는 오혜원과 시작점부터 다르다. 높은 이상과 재능을 지녔지만 스스로를 지켜낼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결국 스탕달의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 르네 클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알랭 들롱 분), 혹은 금기에 도전했던 소설과 영화 속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욕망의 잔재를 뒤로한 채 고스란히 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은 아프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 <밀회>를 일찌감치 놔버리든지, 아니면 단순한 멜로드라마로 여기고 애닳아 하든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밥맛 없는' 등장인물들의 위선과 악행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또 다른 시각을 즐기든지. 하긴, 그 어떤 쪽이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파국은 이미 예정된 것일 지도 모르므로.
불구덩이 위를 걷고 있는 오혜원과 이선재, 두 사람의 욕망은 제거당할 것인가? 무시무시하며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 인간의 감정이란 때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변해버리고 마는 순간의 감정들,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허탈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숙명, 한계에 봉착했을 때의 절망감. <밀회>가 단순히 불륜에 관한 드라마라면 참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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