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페셜-그렇고 그런 사이>의 은하(예지원 분).
KBS
은하가 지켜가고 있는 것은 비단 한옥만이 아니다. 죽은 지 1년이나 지나서도 그의 블로그 이웃을 불러 모아 추도식을 할 정도로 남편의 삶을, 그리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사랑이, 예쁘장하고 젊은 후배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남편의 블로그에 남겼던 뜻 모를 사진과 메시지, 아니 지금껏 편의적으로 미화시켰던 그 모든 것들의 의미가 그녀의 등장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 잊지 못했던 남편이 잊을 수 없는 나쁜 놈이 되어간다. 중2 딸조차 이젠 지겨워하던 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은 배신으로 돌변한다. 아름답게 '집착'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되었다.
하지만 정갈한 한옥을 카메라를 통해 한껏 음미하듯, 드라마는 '질풍노도'와 같은 은하의 감정을 그저 지나가는 여름날 소나기처럼 다룬다. 그리고 다른 드라마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들여다본다. 남편이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 뒤에 숨겨진 진실들을. 나 혼자만 좋아하려고 했다는 후배 준희(송하윤 분)의 다짐처럼, 후배를 주기 위해 샀던 꽃을 아내에게 돌리고, 오래된 한옥처럼 변함없이 살아가려고 다짐한 남편의 마음을 짚어본다.
그녀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그의 감정을 그저 불손한 것만이 아니라, 그의 감정이 닿으려고 노력했던 또 다른 지점을 염두에 두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가 다시 맑아진 한옥의 여름처럼, 남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던 은하는 남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한옥은 불편하지만, 한옥이라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한다. 기와를 다시 얹고, 벽을 다시 바르고, 기우뚱한 기둥을 잇대어 지탱하고. 사람의 손이 가면 한옥은 오래오래 사람과 함께 그 수명을 연장해 간다고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의 사랑은 완벽해야 하고, 완성형이 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은하를 힘들게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남편이 가졌던 완벽한 남편이라는 아우라가 어느 날 나타난 후배로 인해 흐트러뜨려 지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온전한 나의 소유였어야 하는 그의 마음이 헤매던 그 어느 지점, 그래서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그것을 은하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한옥을 지키듯, 은하는 인간으로서의 남편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흔한 바람피운 남편에 대한 용서가 아니다. 사랑 앞에 고뇌했던 인간으로서의 남편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오래된 한옥을 고쳐 살듯, 일그러진 남편을 그 사람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고 그런 사이>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편과 아내라는 사회적 관계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이해까지 확장된 지점. 모처럼 드라마를 보며 마음이 넉넉해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