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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일본인들에게는 '머리'가 없다

[리뷰] 영화 '그리고 싶은 것', 위안부 피해 할머니 그린 그림책 '꽃할머니' 이야기 담아

13.08.06 09:25최종업데이트13.08.0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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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꽃할머니>. 꽃다운 꽃할머니는 트럭에서 내린 일본군에게 걷어차인 후 트럭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다. 불과 13살의 나이에 벌어진 참혹한 일이다.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꽃할머니>. 꽃다운 꽃할머니는 트럭에서 내린 일본군에게 걷어차인 후 트럭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다. 불과 13살의 나이에 벌어진 참혹한 일이다.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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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둘 있다. 한 명의 가해자 부모는 피해자 가족에게 정성껏 사과하며 가해자인 아들에게 다시는 이런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된다고 엄하게 경고하고 따끔하게 혼을 낸다. 반면에 다른 가해자 부모는 피해자와 그의 부모를 향해 피해자가 우리 아들을 자극해서 일어난 학교 폭력이라며 치료비도 제대로 지불하려 들지 않는다.

여기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2차 대전을 일으킨 동맹국을 비유한다. 전자가 피해국가들을 향해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나치와 같은 국가적인 만행이 더 이상 자국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독일이라면, 후자와 같이 뻔뻔한 가해자의 부모가 누구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2차 대전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발뺌하기에 바쁘며 심지어는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처럼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도리어 피해자라고 주장하기까지 하는 나라다.

최근 일본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우익적인 망언과 행보로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었다. 선조의 과오를 다시금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치나 보다. 특히 일본 우익이 망언을 일삼는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위안부'다.

위안부 피해자를 향한 일본 우익의 망언을 예로 들어보자. "위안부는 필수였다"는 주장을 펼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한국인 부모들이 딸을 팔았다"는 발언을 일삼은 시모무라 문부과학상, "위안부는 합법적인 것"이라고 한 이나다 도모미 행정개혁상의 발언은 역사적인 만행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둔갑시키거나 교묘한 술수로 위장하는 고약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모티브 된 <꽃할머니>

 위안부 여성의 막사에서 바지춤을 주섬주섬 내리는 일본군의 만행을 그린 권윤덕 작가의 작품
위안부 여성의 막사에서 바지춤을 주섬주섬 내리는 일본군의 만행을 그린 권윤덕 작가의 작품사계절

일본 우익이 집권하는 가운데서 참다운 역사 교육이 이루어질 리 만무할 터. 일본 군부에게 성노예로 꽃다운 나이에 짓밟힌 위안부 여성의 실상을 일본의 젊은 세대가 제대로 알 길이 없는 건 당연하다. 제국주의 역사의 증인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 분 한 분씩 고령으로 돌아가시고 생존자가 채 60명도 남지 않은 현실 가운데, '평화'를 이야기하는 한 그림책 프로젝트가 한·중·일 삼국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작가 12명이 그린 그림책을 출간하는 것으로부터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는 시작한다. 세 나라가 바라보는 평화란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의 권윤덕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존할 동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모티브가 됐다.

권윤덕 작가는 그림책 <꽃할머니>를 위해 3729장의 그림을 연습으로 그려야만 했다. 색을 덧입히는 데에만 2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피해 국가인 한국인의 관점으로 보면 애잔하게 다가오는 그림이 한 두 점이 아니다.

 식민지 미성년자를 향한 일본군의 성적인 야만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본군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얼굴 대신에 일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촉수들이 징그럽게 자라나 있다.
식민지 미성년자를 향한 일본군의 성적인 야만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본군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얼굴 대신에 일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촉수들이 징그럽게 자라나 있다. 사계절

꽃다운 한국 아낙을 유린하는 일본군의 모습에는 하나같이 머리가 그려져 있지 않다. 위안부라는 성범죄가 개인의 성폭행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의 계획적인 성범죄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렸기에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일본 군복과 군화가 있을 뿐이다. 식민지 미성년자를 향한 일본군의 성적인 야만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본군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얼굴 대신에 일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촉수들이 징그럽게 자라나 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조공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조선 아낙들은 당시 조선 사람들이 화냥년이라고 배척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품어주지는 않았다. 권 작가는 외국 군인에게 몸을 판 화낭년 취급하는 광복 이후 사람들 또한 가해자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과오 인정하고 가르쳐야

'그날도 꽃할머니는 언니와 나물을 캐러 나갔다. 트럭을 타고 온 군인들이 꽃할머니를 발로 차고 언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는 트럭에 태웠다. 차에서 배로 옮겨진 꽃할머니와 언니는 배 아래에서 스무 명 남짓의 아낙들을 본다.

이들과 몇 날 며칠을 배로 간 꽃할머니는 군인 막사 안의 방에 갇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했다. 방문 앞에서 군인들이 줄을 섰다. 하나가 들어왔다 나가면 다른 하나가 들어오는 식으로 하루에 몇 명이나 들락거렸는지 셀 수 없었다. 13살 꽃할머니의 아랫도리는 피로 물든다.' (영화 <그리고 싶은 것> 내레이션 일부)

위안부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권윤덕 작가의 그림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도 녹여내고 있었다. 바로 권 작가 자신이 성폭행의 피해자인지라 심윤덕 할머니의 아픔에 자신의 아픔을 덧입힐 수 있었던 것. 권윤덕 작가의 그림은 2010년 우리나라에서 그림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방문 앞에서 군인들이 줄을 섰다. 하나가 들어왔다 나가면 다른 하나가 들어오는 식으로 하루에 몇 명이나 들락거렸는지 셀 수 없었다.
방문 앞에서 군인들이 줄을 섰다. 하나가 들어왔다 나가면 다른 하나가 들어오는 식으로 하루에 몇 명이나 들락거렸는지 셀 수 없었다. 사계절

일본의 대다수 아이들은 자신의 조국이 식민지 국가의 여성을 성노예로 전락시킨 범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라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일본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웃 국가인 대한민국과 중국이 일본에게 얼마나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가를 우익 특유의 망언으로 먼저 선동하고 부추긴다.

독도와 댜오위다오 문제, 혹은 역사 문제에 딴죽 걸면서 말이다. 한국은 일본 외교관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중국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폭력 시위를 통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그러면 일본 우익은 자신들이 먼저 이웃 국가에게 딴죽 건 것은 쏙 빼놓는다.

일본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면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등의 제국주의적인 근성을 일본 국민에게 은근슬쩍 강요하고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이 이러한 우익의 프로파간다를 자국의 미래를 위한 자위권으로 착각하고 그 논리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비극이 아니던가.

하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가 옛 선조들의 과오를 역사 가운데서 제대로 파악할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는 우익의 눈치를 보느라 일본에서는 아직도 출간되지 못했다. 일본 국민들이 진정으로 밝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우경화라는 파란 위약 대신에 과거를 반성할 줄 아는 빨간약을 선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본 우익은 이웃 국가를 먼저 자극한 후 자국민을 향한 파란약의 프로파간다를 예나 지금이나 마구 뿌리기만 한다.

<그리고 싶은 것>은 얼마 남아있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의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증오를 촉발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일본 우익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자국민을 우민화시키기에 바쁜가를 증명하는 서글픈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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