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설의 주먹>학창시절 같은 반인 재벌의 아들 송진호에게 시달리던 이상호(유준상 분)은, 자라서도 그의 최측근이 되어, 궂은 일을 도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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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전설의 주먹'들은 언제나 그 사이에 존재했다. 양쪽의 동경과 멸시 속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집단인 것이다.
흔히 주먹들을 강자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휘둘린다. 학교의 '짱인 이상훈은 재벌의 아들인 송진호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바쁘고, 경찰과 거물 조직폭력배들은 그들의 범죄에 고등학교 주먹패를 이용한다. 어른이 된 후에도 이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상훈은 기업 총수가 된 송진호의 측근으로 일하며 궂은 일을 도맡고, 신재석은 사업가로 변신한, 고교시절 자신을 속였던 조직폭력배에게 여전히 이용당한다.
돈을 가진 자들에게, 주먹들은 그저 노리개일 뿐이다. 판돈을 놓고 누가 더 센가 재미삼아 내기를 걸고 그 시합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귀찮은 일의 처리가 필요할 때면 불러서 써먹는 유용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힘 없는 이들에게 학창시절의 '주먹'들은 전설이자 악몽 같은 존재다. 영화 속에서 힘 없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월급쟁이 아저씨'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 지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 삶에서, 철모르던 학창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꿈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끔, 동창들과 그 시절을 추억하며 버거운 삶을 견딘다. 이 때, 시내를 주름잡던 학교 '짱'들의 영화 같은 무용담은 그들의 왕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양념 역할을 한다. 이들이 되뇌이는, 한없이 부풀려진 학교 간의 싸움 이야기는 사회의 냉혹함을 모르던 시절에 대한 반추일 뿐 아니라, 현실에 눌린 '아저씨'들이 품은 서글픈 판타지다.
'주먹'들이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은 딱 여기서뿐이다. 그들이 무용담 속의 주인공이 아닌 같은 반 친구로 다가오면, 힘 없는 이가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개인적인 기억이다. 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에서 승승장구하며 동창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임덕규는 생전 처음 동창회에 나가보지만, 학창시절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들의 분노로 쫓겨나다시피 자리를 뜬다.
'강펀치'를 날리고 돌아서는 뒷모습, 통쾌하면서도 씁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