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MBC
지난 아픈 과거를 깨끗이 잊고 싶었던 수연은 형준과 함께 한국에 온 이후에도, 14년 전 자신이 이수연이었다는 것. 심지어 그동안 애타게 보고 싶었던 엄마 명희까지 외면하고자 한다.
14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모녀간의 상봉에도 불구, 자신의 과거를 거부하는 딸 수연에게 엄마 명희는 기꺼이 딸 수연을 못 본 척해준다. 지난 14년간 애타게 찾아다닌 딸이건만, 딸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온몸을 다 바쳐 자신을 거부하는 딸조차 감싸 안아주는 것이 명희의 사랑법이다.
잊고 싶었던 지난날조차 따스하게 감싸주는 엄마와 정우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수연은 부정하고만 싶었던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형준 에게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고 그의 상처를 닦아줄 수 있는 보호자가 없다. 오직 형준의 재산을 노리는 승냥이 같은 어른들만 가득 에워쌀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태준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 했던 형준은 어른이 된 이후, 태준이 자신에게 했던 그대로 똑같은 앙갚음을 시도한다. 아버지의 욕심으로 친한 친구를 잃어야 했던 정우도 태준을 원망한다. 지난 20일 방영한 <보고 싶다> 13회에서 형준의 대사처럼, 정우와 수연, 형준은 태준의 탐욕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세대의 욕심에 이제 막 피어오르려고 하는 어린 꽃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부서진 꼴이다.
수연이 성폭행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집까지 나온 정우는, 자신이 낳은 아들도 아니요, 수연이 폭행을 당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우를 친아들처럼 사랑하는 명희 덕분에 '경찰'이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길을 택할 수 있었다.
권위를 앞세워 자기보다 어리고 힘이 약한 약자에게 폭력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한태준에게 짓밟힌 상처를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따스한 도시락을 챙겨주는 김명희가 감싸준 것이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 세대를 부정하거나, 혹은 복수를 시도하는 <보고 싶다>의 주인공들의 행태는 심하게 과장되어있는 측면도 있지만, 현재 세대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연상시킨다.
물론, 자식 세대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해도, 설사 그들의 선택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해도 강형준 처럼 부모 세대에게 복수의 화살을 당길 수 없다. 그렇다고 부모 세대들이 한태준 처럼 자식 세대에게 무조건 복종만은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한태준식의 폭력적인 억압은 되레 더 큰 갈등을 가져오는 법이다.
현재 부모 세대와의 깊은 갈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절망'에 빠진 청춘들을 위한 최고의 치유법은 위로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또래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방식도 있지만, 이왕이면 나보다 더 경험 많고 연륜 많은 어른이 청춘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요즘 사회적 트렌드로 굳어진 지 오래인 '멘토'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공손한 복종'을 강요하는 어른에게 지친 청춘들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또 다른 어른들. 우리 청춘에는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김명희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