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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복고였다면, <응답하라 1997> 신드롬 없었다

[드라마리뷰] '오빠' 덕분에 아프지만은 않았던 IMF 시대를 추억한다

12.09.18 18:18최종업데이트12.09.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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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응답데이' 또는 '응칠'이라는 요즘의 신조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만일 이 용어들을 안다면 당신은 <응답하라 1997>의 위력을 아는 시청자다. 케이블TV 드라마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중파 드라마 못지않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7>이다.
<응답하라 1997>'응답데이' 또는 '응칠'이라는 요즘의 신조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만일 이 용어들을 안다면 당신은 <응답하라 1997>의 위력을 아는 시청자다. 케이블TV 드라마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중파 드라마 못지않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7>이다.CJ E'&M

'응답데이' 또는 ' 응칠'이라는 요즘의 신조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만일 이 용어들을 안다면 당신은 <응답하라 1997>의 위력을 아는 시청자다. 케이블TV 드라마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중파 드라마 못지않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7>이다.

DDR, PCS, 샤킬 오닐 가방, 삐삐, 이스트팩, 815 콜라 같은 드라마 속 깨알 같은 미장센은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은 절대 알 리 없는, 90년대 말을 관통한 당시 십대나 이십대만 알 수 있는 문화코드다.

배경음악의 선곡 또한 미장센 못지않게 탁월하기는 마찬가지다. H.O.T와 젝스키스의 수많은 히트곡은 물론이고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카니발의 '그녀를 잡아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리아의 '눈물',

사준의 '메모리즈', 전람회의 '취중진담' 등은 마치 뮤지컬 속 넘버가 주인공의 대사를 화음 달린 대사 역할을 하는 것처럼 캐릭터의 정서를 한껏 대변한다. 드라마의 적재적소에 정교하게 배치된 배경음악은, 빵을 구울 때 이스트가 필요한 것처럼 <응답하라 1997>의 드라마 정서를 한껏 부풀리기에 충분하도록 만들었다.

복고 코드 속 '완벽한 남자'의 첫사랑이 충족시키는 것

<응답하라 1997> 여성 시청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윤제에게 자연스레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남자의 쑥스러운 첫사랑 로망이라는 판타지를  <응답하라 1997>은 충족시켜준다.
<응답하라 1997>여성 시청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윤제에게 자연스레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남자의 쑥스러운 첫사랑 로망이라는 판타지를 <응답하라 1997>은 충족시켜준다.CJ E&M

복고는 요즘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주요한 경향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요나 드라마,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일련의 복고 코드는 우리가 잊고 있던 추억의 정서를 환기하는 기능을 갖는다.

만일 <응답하라 1997>이 90년대 소녀들의 팬덤 정서, 혹은 90년대를 풍미하건 가요나 소품이라는 미장센의 치장만으로 복고 정서를 불러오는 수순에만 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신드롬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응답하라 1997>이 복고를 현대로 불러오는 방식을 영화 <건축학개론>과 비교하여 살펴보자. <건축학개론>은 90년대 정서를 불러일으키되 현대로 불러오는 대상이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가 된다. 한데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는 개인이지 90년대 정서의 전부가 아니다. <건축학개론>이 소환하는 복고의 정서는 개인적 차원의 복고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이 소환하는 복고는 <건축학개론>이 불러오는 복고와는 달리 다양하다. 먼저 <응답하라 1997>이 사랑의 아련함을 판타지라는 차원에서 다루는 방식은 <건축학개론>과 동일한 방식이다.

광안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윤제(서인국 분)는 여심을 뒤흔드는 마성을 가진 자체 발광의 훈남이다. 눈 밑의 애교점은 고소영의 애교점 마냥 매력덩어리 그 자체도 모자라 지적 능력 또한 수능을 농락할 지경의 남자. 그런 윤제가 시원(에이핑크 정은지 분)에게 속 시원하게 고백 한 번 하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으니, 여성 시청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윤제에게 자연스레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남자의 쑥스러운 첫사랑 로망이라는 판타지를 <응답하라 1997>은 충족시켜준다.

IMF로 아픈 시대? '오빠'로 행복했던 시대

<응답하라 1997> 온라인에서 '오타쿠'를 '오덕후'라고 발음하듯, '빠순이'를 '박순이'로 발음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은 <박순이 가족>이 될 뻔한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빠순이가 아이돌 오빠들을 추앙하는 팬덤 문화를 담는 드라마다.
<응답하라 1997>온라인에서 '오타쿠'를 '오덕후'라고 발음하듯, '빠순이'를 '박순이'로 발음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은 <박순이 가족>이 될 뻔한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빠순이가 아이돌 오빠들을 추앙하는 팬덤 문화를 담는 드라마다.CJ E'&M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 말이라는 시대상을 소환한다. 팬덤 문화를 살펴보자. <응답하라 1997>의 제목이 하마터면 <박순이 가족>이 될 뻔했을 지도 모르는 아찔한 사연을 아는 시청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오타쿠'를 '오덕후'라고 발음하듯, '빠순이'를 '박순이'로 발음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은 <박순이 가족>이 될 뻔한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빠순이가 아이돌 오빠들을 추앙하는 팬덤 문화를 담는 드라마다. 여주인공 시원은 H.O.T 토니의 마눌님이 되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인 부산의 여고생이다. 그의 절친 유정(신소율 분) 역시 강타의 마눌님을 자처하면서 두 사람은 H.O.T라는 팬덤 아래 정신적인 '동서'가 된다.

두 부산 소녀의 팬덤 문화를 드라마로 시청하는 시청자 가운데에는 '나에게도 이러한 풋풋한 시절이 있었지' 하며 소녀 시절 팬덤 문화에 푹 빠졌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소환하는 H.O.T나 젝스키스의 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은 30대나 40대가 되었겠지만 H.O.T나 젝스키스 팬들은 분명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당시 아이돌 오빠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 벅차오르던 아름다운 시절을 상기하고 젊은 날의 판타지를 그리워한다. 아이돌 오빠들을 사랑하며 더없이 행복에 겨워하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팬덤 문화라는 향수는 당시의 시대적 아픔인 IMF에도 이러한 팬덤의 향수가 존재하던 시절이라는 아련함을 간직하게 만든다.

<모래시계>처럼 시대상을 정곡으로 관통하는 방식의 복고가 아니라, IMF라는 아픈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오빠를 사랑하던 기억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아련함 말이다. 어쩌면 이는 IMF를 관통하는 세대가 IMF의 직격탄을 맞은 당시 4050세대가 아닌, 문화적 소비의 주체이던 1020세대였기에 <모래시계>처럼 시대적 아픔보다는 팬덤 문화의 향수를 보다 많이 간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은 90년대 정서를 불러일으키되 현대로 불러오는 대상이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가 된다. 한데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는 개인이지 90년대 정서의 전부가 아니다. <건축학개론>이 소환하는 복고의 정서는 개인적 차원의 복고다.
<건축학개론><건축학개론>은 90년대 정서를 불러일으키되 현대로 불러오는 대상이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가 된다. 한데 첫사랑의 '그', 혹은 '그녀'는 개인이지 90년대 정서의 전부가 아니다. <건축학개론>이 소환하는 복고의 정서는 개인적 차원의 복고다. 명필름

<건축학개론>과의 차이점이 첫사랑이라는 개인만을 소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을 팬덤 문화라는 판타지로 소환한 것은 분명 <응답하라 1997>만의 매력이자 <건축학개론>과의 차별점이다. 90년대 말의 암울한 정서를 <응답하라 1997>은 팬덤 문화, 첫사랑 코드와 맞물려서 우정과 가족주의라는 양념으로 한껏 버무려 시청자에게 맛깔나게 선사한다. 단순히 복고 문화의 소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청자에게 사랑 받은 드라마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진화한다. <해를 품은 달>에 이어 <추적자>, <넝쿨째 굴러온 당신>, <골든타임>과 레벨을 같이할 수준의 <응답하라 1997>이 케이블 채널에서 태동했다는 현상 하나만으로도 한국 드라마는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응답하라 1997> 이후 케이블TV에서 시청자의 가슴을 방망이칠, 아니 공중파 부럽지 않은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응답하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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