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습지생태보고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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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석이네들을 향해 너무 편하게 산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입장에만 충실하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상대 입장을 헤아린다거나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공감능력 불량에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부족한 사람들이다.
사실 이런 식이라면 기성세대인 이들이 다음 세대인 젊은이들과 소통하거나 유대를 맺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성세대에 대한 다음 세대의 존경? 역시 생길 리 만무하다.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드라마가 바라보는 계급 간 이질감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습지생태보고서'의 분류법에 따라 이른바 '하위종'에 속하는 규석이네들은 가난을 달고 살아온 젊은이들이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동거하는 이들의 생활은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매달 들어가는 월세와 생활비, 매학기 들어가는 학비 때문에 걱정이 마를 날 없는 이들은 날이 더워지자 방에서 대부분 속옷이나 파자마 차림을 하고 후줄근하게 지낸다. 낡은 선풍기 하나 달랑 있을 뿐인 그들의 방이 너무 덥고 습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들은 학교에 비치돼 있는 냉온수기에서 식수를 조달하고, 생활 쓰레기를 모아 학교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한다. 이들은 하루하루 사는 일이 악전고투에 가깝다.
반면 유산 계급에 속하는 상진과 윤정은 상대적으로 '쉽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는 이들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일도 '쉽게' 결정하고 실행하며, 친구에게 명품 수트를 빌려주는 일이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이트 상대에게 고가의 옷을 사주는 일마저 '쉽게' 한다. 거기다가 스타일 좋고 매너까지 좋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재력을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사는 일에 이용할 줄 아는 수완까지 지녔다.
이들을 바라보는 규석이네들의 시선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진이 빌려준 명품 수트를 두고 규석은 "이거 입는다고 내 본질이 달라지냐?"고 말하면서도, 그 수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서서는 "'뽀대'는 나네"라고 자조한다.
또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을 두고 그들의 눈빛이나 말투에 배인 우월의식이 장난 아니라거나, 영어 못하면 말도 안 섞는다든가 하는 규석이네들이 나누는 '뒷담화'에서도 동경과 비난의 시선은 공존한다. 이른바 물질만능주의와 승자독식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일면이 반영된 결과다.
<습지생태보고서>,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경고그래서 가난이 부끄러운 규석이네들은 이른바 '이종'(異種)들에게 가능하면 이를 숨기려 든다. 규석은 상진에게 단란주점 아르바이트 사실을 숨기며, 현욱은 여자 후배들 앞에서 가정식 랍스타 요리를 해먹었다며 우쭐거린다. 이들이 자신들의 가난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동병상련의 존재들뿐이다.
이들 사이에선 가난 때문에 고생한 얘기가 때론 무용담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보고 가난이 자랑이냐는 규석의 말에 녹용(이재원 분)은 이렇게 답한다.
"나중에 잘 되면 자랑 돼. 무조건 잘 돼라."동병상련이란 결국 공감대가 넓음을 뜻하는 말이다. 셋이 살기에도 비좁은 공간에 규석과 친구들이 오갈 데 없는 녹용을 들인 건, 마치 과부가 홀아비 사정 안다는 옛말처럼, 그의 곤경을 차마 남의 일로 보고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돕고 살아야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걔 돈 없어서 학교 그만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러냐?" 등의 대사는 공고한 연대의식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