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약속>에서 지형(김래원 분)은 몰래 사귄 연인 서연(수애 분)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약혼녀 향기(정유미 분)에게 파혼을 통보한다.
SBS
고아에 아파트 대출금으로 허덕이고 있지만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남의 남자를 차지할 정도로 당당하던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기억상실증이다. 서연의 나이 겨우 서른 남짓. 그녀는 물론이고 동생과 사촌오빠(이상우 분) 그리고 이미 헤어진 남자 지형에게조차 청천벽력과 같은 악재이다.
서연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형은 갑자기 서연에게 한없이 착한 남자로 다가서고자 한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곧 죽을 지도 모르는 서연의 곁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마음에도 없었던 향기(정유미 분)와 파혼을 선언하겠단다. 서연에게 착한 남자가 되면 향기에게는 한없이 나쁜 남자가 되는 셈이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직 지형 밖에 모르고 "오빠 사랑해"를 "엄마"라는 단어보다 많이 불렀던 향기는 "널 사랑하지 않아" 라는 지형의 한마디에 쇼크를 받는다.
진작부터 지형이 자신의 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향기 엄마(이미숙 분)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심지어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지형에게 배신당한 '팔불출' 딸에게 손찌검까지 하기 이른다. 지형과 향기의 결혼으로 사돈으로 맺어지기 이전에도 오랜 친구로 병원장과 병원 이사장으로 지내온 양 측 집안의 충격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예 지형의 아버지(임채무 분)은 사랑 때문에 결혼 일주일 앞두고 파혼을 선택한 지형에게 가장의 권한을 이용하여 "사랑타령 그만하라" 라고까지 당부하였다.
애초부터 지형은 향기를 사랑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 재민(이상우 분)의 집에 갔다가 한눈에 반한 서연을 만나면서부터 지형의 가슴 속에는 오직 서연뿐이었다. 하지만 지형은 부모 잘 만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대신에 결혼 상대마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권한으로 정해지는 운명을 받아들여야했다. 게다가 지형의 약혼녀인 향기는 전형적인 부잣집 딸로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가씨로 곱게 자랐다. 서연을 선택하기 위해 향기를 버리자니 지형은 집안에서 축출된다는 두려움보단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지형이 하자는 대로만 하는 '오빠 바라기' 향기가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