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 앞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조용형, 김정우, 이동국, 이정수, 기성용, 이운재, 이영표, 염기훈, 김치우, 이근호, 오범석 선수.
권우성
유독 이운재 선수가 기록한 선방의 역사에는 중요한 경기의 승부차기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직도 생생한 2002년 6월 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8강 토너먼트 승부차기(한국 5-3 스페인) 순간입니다.
상대 팀 골문은 이번에 남아공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이케르 카시야스가 지켰기 때문에 더 극적인 승부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노련한 황선홍 선수(현 부산 아이파크 감독)를 시작으로 당시 우리 선수들은 모조리 골을 성공시켰지만 엄청난 부담을 느낀 스페인의 날개공격수 호아킨은 팀의 네번째 키커로 나와서 이운재에게 막혔습니다. 각도를 줄이며 왼쪽으로 몸을 날린 문지기 이운재의 감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덕분에 4강 신화를 이룬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운재는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여러 차례 승부차기 신공을 자랑하며 축구팬들에게 든든한 문지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운재의 이름이 또 한 번 빛나는 장면은 2004년 12월 12일 빅 버드에서 열린 2004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수원 vs 포항)입니다. 여기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문지기로서 그 실력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김병지(현 경남 FC)와 이운재'였습니다. 더구나 포항의 마지막 키커는 꽁지머리 김병지였습니다. 이 명장면은 결국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멋지게 막아낸 이운재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리고 이운재의 축구 시계는 2007년 7월 22일 벌어진 이란과의 아시안컵 8강 맞대결로 흘러갑니다. 이란 선수들도 이러한 이운재 선수의 승부차기 신공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왔겠지만 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이운재 선수는 승부차기에서 상대 팀 주장 마다비키아와 카티비의 슛을 각각 막아내며 4강 진출의 기쁨을 또 한 번 축구팬들에게 선물합니다.
여기에다가 지난 해 11월 8일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9 FA(축구협회)컵 결승전 승부차기 승리(수원 4-2 성남) 기록까지 보태면 할말이 더 없을 정도입니다. 성남 수비수 김성환과 전광진의 슛을 몸 날려 막아내는 그 동작은 이제 이운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이처럼 국가대표팀과 소속팀 수원 블루윙즈를 오가며 그가 내던지는 몸놀림을 보고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11미터밖에 안 되는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 골잡이들은 무시무시한 허벅지 근육을 자랑하며 강한 킥을 해댑니다. 그 상황에서 눈 하나 꿈쩍 않고 자신이 땀 흘린 만큼, 자신이 믿는 문지기로서의 감각 만큼 몸을 아끼지 않는 그를 보며 놀라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 장면처럼 그는 조용한 11미터의 승부사입니다.
당신은 각도를 얼마나 잘 잡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