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의 3-2 승리 소식을 알리고 있는 유럽축구연맹 누리집(uefa.com)유럽축구연맹
방문 팀을 이끌고 밀라노에 들어온 퍼거슨 감독은 미드필더로 다섯 명을 배치하며 강한 허리 싸움을 걸었다. '플레처-캐릭-스콜스'를 동시에 내보낸 것만으로도 어떤 경기력을 준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패배의 부담을 안고 올드 트래포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로 보였다.
거기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박지성을 측면에 세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니는 오른쪽에서 전형적인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박지성은 그렇지 않았다. 박지성은 루니를 맨 앞에 세운 상황에서 특유의 폭넓은 몸놀림을 자랑하며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것. 전성기의 안정환이 떠오르는 자리였다.
이는 마치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한국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에게 안정환을 데려다가 쓰면 좋지 않겠느냐는 퍼거슨 감독의 가르침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박지성은 맨유 공격의 중요한 열쇠였고 0-1로 뒤지던 팀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크로스 타이밍을 잡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안방 팀 간판 수비수 네스타를 보기 좋게 따돌리는 몸놀림이 훌륭했고 36분에 스콜스의 동점골이 나오기 직전 도움을 준 플레처에게 밀어준 찔러주기가 매우 적절했다.
1-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시작한 후반전에는 그의 역할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고 하지만 결코 수비를 게을리하는 선수가 아니기에 박지성은 상대 플레이메이커 피를로를 괴롭혔고 역습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공간 움직임을 통해 루니나 측면 미드필더들에게 좋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맨유, 짜릿한 역전승
경기 시작 2분 13초만에 안방 팀 AC 밀란은 행운의 선취골을 얻어냈다. 베컴이 오른쪽 미드필드 지역에서 찬 프리킥을 맨유 수비수 에브라가 걷어낸다는 것이 호나우지뉴 발 앞에 떨어진 것. 호나우지뉴는 이 공을 잡지도 않고 강한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했고, 운 좋게 캐릭의 다리에 맞고 방향이 바뀌며 골이 되었다.
이에 반격에 나선 맨유는 오른쪽 측면에서 나니가 좋은 기회를 여러 차례 잡았지만 정확성이 떨어지는 크로스를 네 차례나 날려버렸고 훈텔라르를 수비하던 가운데 수비수 에반스가 흔들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믿을 것은 '플레처-캐릭-스콜스'가 버티고 있는 노련한 미드필드였다. 게다가 퍼거슨 감독의 특별 주문을 받고 들어온 박지성이 상대팀 공격 전개의 열쇠라 할 수 있는 피를로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멋진 역전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박지성 대신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뛴 플레처는 오른쪽 측면까지 폭넓은 활약을 펼치며 동점골(36분)을 도운 것도 모자라 74분에는 자로 잰 듯한 왼쪽 띄워주기로 루니의 이마 결승골을 도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아울러 퍼거슨 감독의 과감한 결단은 무엇보다 적절했다. 후반전에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니를 빼고 발렌시아(65분)를 들여보낸 것. 그는 거짓말처럼 들어간 지 딱 1분만에 포물선을 그리는 멋진 크로스로 루니의 역전골을 도왔다. 명장의 눈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랐다.
맨유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캐릭이 쫓겨난 일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마이클 캐릭이 불필요한 시간 끌기 반칙을 저지르는 바람에 빨간 딱지를 받아 다음 달 11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된 것. 그래도 맨유 선수들은 네 차례의 맞대결 패배의 불편한 역사를 뒤집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