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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가 '불편한 영화'가 된 까닭은?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 이유

09.02.27 18:01최종업데이트09.02.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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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최고의 화제작 <워낭소리>, 드디어 봤다. 이 영화는 나오기 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독립영화인 만큼 영화 <우리 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 움직임이 미리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 관심을 끈 건 이 영화 배경이 '농촌'이라는 것.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농촌 이야기를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정도 기대감으로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 영화 볼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이 영화를 두고 난리가 났다. 독립영화 사상 최고 히트작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박스오피스 예매 1위 자리마저도 가져갔다. 영화 만든 감독조차 그 갑작스런 '인기'가 두렵다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사람들 입과 발을 타게 된 것이다.

 

독립영화가 잘 된 것도 좋고, 농촌 이야기와 부모님 삶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좋고. 어느 모로 봐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 좋은 행렬에 더 늦게 참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이 영화를 봤다. 평일 오후였는데 자리가 거의 들어찬 걸 보니 이 영화가 갖는 힘이 실감난다. 특히 어르신들이 참 많았다. 제 아무리 유명해도 어르신들까지 발걸음 하게 만든 영화는 잘 없었을 테지.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어르신들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감독한테 크게 박수 쳐주고 싶다.

 

어쩌면 다큐멘터리 영화가 꾸며낸 이야기로 만든 영화보다 더 '극'적일 수가 있을까?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담아낸 이야기들을 엮었기에 '줄거리'를 채울 기본 내용이 탄탄했을 테지만 그래도 참 놀라웠다. 짜릿하기까지 했다. 나는 워낙 논픽션을 좋아하므로. 소중하게 생각하므로. 하지만 그 짜릿함은 어디까지나 '형식'에서 비롯한 것.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 짜릿함은 어느새 무너지고야 만다. 

 

등 굽은 할머니, 다리가 성치 않은 할아버지와 닮은 소의 모습  극을 이끄는 건 노부부지만, ‘소'도 엄연히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의 삐쩍 마른 몸조차 그대로 이야기가 되었다.
등 굽은 할머니, 다리가 성치 않은 할아버지와 닮은 소의 모습 극을 이끄는 건 노부부지만, ‘소'도 엄연히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의 삐쩍 마른 몸조차 그대로 이야기가 되었다. 스튜디오 느림보

 

극을 이끄는 건 노부부지만, '소'도 엄연히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의 삐쩍 마른 몸조차 그대로 이야기가 되었다. 등 굽은 할머니, 다리가 성치 않은 할아버지 모습과 동격으로. 소가 마흔 살을 살았단다. 마흔 살이면, 사람 수명과도 맞먹을 수 있다. 소를 '먹을거리'로만 생각해 온 우리들한텐 정말 치명적인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를 '생명 있는 존재'가 아닌 농사일을 하는 도구, 또는 먹을거리로만 여겨왔다. 고기를 체질상 잘 못 먹는 나조차 그랬다. 하물며 광우병 소로 한참 떠들썩할 때도 '소의 생명성' 그 자체를 두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으니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더 답답한 건 워낭소리를 보고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쇠고기를 먹을 거라는 사실. 우연이었든, 진짜 소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었든, 이 영화에서 소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았음에도. 눈물이랑 함께 묻어난 그 애절한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이 영화는 '따뜻한 영화'라 들었고, 그럴 거라고 기대를 했건만 보는 동안 마음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다. 생명을 가진 소에 대하여 치명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 그러했고, 노부부가 힘든 몸으로 계속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랬다.

 

여든 살이 다 되는 두 노인네가 꾸역꾸역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 어쩌면 아무 하릴없이 지내고 있는 다른 노인들에 비하면 아름답고 또 살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 아니겠나. 특히 노부부의 일상에서 엿보인 '외로움'의 흔적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 흔적들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리고 우리들이 나이 들어서 꾸려갈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참 불편하고 힘들었다. 원래 과묵한 분일수도 있겠지만, 자주 '표정 없는 표정'을 지으시는 할아버지 얼굴을 볼 때는 더더욱.   

 

노부부의 일상에서 엿보인 ‘외로움‘의 흔적들 여든 살이 다 되는 두 노인네가 꾸역꾸역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 어쩌면 아무 하릴없이 지내고 있는 다른 노인들에 비하면 아름답고 또 살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 아니겠나.
노부부의 일상에서 엿보인 ‘외로움‘의 흔적들여든 살이 다 되는 두 노인네가 꾸역꾸역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 어쩌면 아무 하릴없이 지내고 있는 다른 노인들에 비하면 아름답고 또 살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 아니겠나. 스튜디오 느림보

 

다시 한 번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걸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보면서, 보고난 뒤에도 난 계속 저 물음 속에 빠져 있다. 더불어 우리가 도구나 먹을거리로만 치부하고 있는, 사람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워낭소리를 두고 나오는 이야기들 가운데 '비판'하는 목소리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할머니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오히려 할머니를 통해 드러내놓고 여성을 차별하는 영화다. 40-50대의 향수에 기대어 만든, 그렇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영화일 뿐이다. 할아버지의 '소' 사랑은 지독히 인간 중심이다.

 

그런 비판들 이해하고 또 인정한다. 영화 맨 끝에 나오는 자막, "유년의 우리를 위해 헌신하신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저 비판을 한 번쯤은 곱씹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거 아는지. 80대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삶과 할아버지한테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던 마흔 살 넘게 살아 온 소의 삶은 그 모든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거. 마치 길에서 여자들이 담배 피는 모습에 뺨이라도 후려칠 듯 다가오는 사람들마저도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길에 턱 주저앉아 담배 피는 모습을 보면서는 오히려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세월'은 그리고 '나이 듦'은, 편견이든 올바른 비판이든 다 뛰어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노 부부의 삶  말 못하는 동물밖에는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아버지. 자기를 평생 고생시키고 때로는 무시도 많이 했을 그 할아버지밖에는 비록 잔소리뿐일지라도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머니.
나를 불편하게 만든 노 부부의 삶 말 못하는 동물밖에는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아버지. 자기를 평생 고생시키고 때로는 무시도 많이 했을 그 할아버지밖에는 비록 잔소리뿐일지라도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머니. 스튜디오 느림보

 

이 영화를 두고 우리가 정말로 따져볼 대상은, 영화보다는 우리들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아픈 몸으로도 농사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말 못하는 동물밖에는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아버지. 자기를 평생 고생시키고 때로는 무시도 많이 했을 그 할아버지밖에는 비록 잔소리뿐일지라도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자식들한테 무시당하느니 힘들어도 여기서 살아야지."하시던 넋두리 앞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또한 제 아무리 인간 중심일 지라도 할아버지만큼 인간에 가까운 대상으로 동물을 바라보고 사랑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던진 저 물음에 모두 자유롭지 못한 나머지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난 뒤에도 계속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이 영화는 나한테 '따뜻한' 영화가 아니라 지독히 '불편한' 영화가 되버린 것. 그럼에도 이 불편한 영화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내 삶을, 부모님 삶을, 그리고 인간의 삶 그 자체와 나아가 생명을 가진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지독하게 고민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소가 흘렸던 그 눈물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소와 가족처럼 살았던 노부부의 쓸쓸하고도 애틋했던 모습,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꼈던 그 '불편함'까지도.

2009.02.27 18:01 ⓒ 2009 OhmyNews
워낭소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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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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