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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상대에게 강팀으로 인정받기

국가대표 형들과 16세 이하 아우들의 인상적인 두 가지 승리를 지켜보며

08.10.16 15:01최종업데이트08.10.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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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90분 내내 상대 선수의 거친 숨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몸을 부딪치며 그 실력을 겨루는 경기이기에 감정이 앞서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이에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면 몸이 굳어져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때가 많다.

 

15일은 공교롭게도 우리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경기와 16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한일전이 나란히 열려 축구팬들을 잠 못 들게 하는 날이 되었다. 맏형들이 뛴 UAE(아랍에미리트)와의 국가대표 A매치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가 걸려있는 예선 일정이라 보다 많은 팬들이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그 완승의 기쁨을 안고 16세 이하 아우들의 한일전 자존심 대결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국가대표 조용형의 실수, 동료들의 추가골 + 쐐기골

 

 DF 조용형
DF 조용형대한축구협회

먼저 열린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최종예선 두 번째 경기는 약 70분이 흐르는 동안 아랍에미리트를 2-0으로 압도하며 오래간만에 완승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 장면이 수비쪽에서 나타나고 말았다. 곽태휘와 함께 가운데 수비수로 나온 조용형은 볼 처리를 안이하게 하다가 그만 상대 공격수에게 가로채기를 당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오트만 대신 들어와 뛰기 시작한 UAE의 발 빠른 골잡이 이스마일 알 함마디는 조용형에게 공을 빼앗은 뒤 침착하게 문지기 정성룡까지 쓰러뜨리며 만회골을 터뜨린 것.

 

사실, 조용형은 지난 11일 수원 빅 버드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도 나와서 무실점 3-0 완승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특히, 후반전에 이근호의 멋진 추가골을 돕는 날카로운 찔러주기를 성공시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활약이 컸다.

 

UAE와의 이 경기에서도 조용형은 재빠른 커버 플레이 등 가운데 수비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고 때로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까지 올라와 우리 선수들이 중원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그의 활약을 동료들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2-1로 추격의 상황에 몰린 뒤 동료 미드필더와 골잡이들은 한 발씩 더 움직이며 강팀의 면모를 상대 선수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이것이 9분 뒤 박지성의 날카로운 찔러주기에 이은 이근호의 돌려차기로 결실을 맺었고 종료 직전에는 김형범의 자로 잰 듯한 코너킥 세트 피스가 조용형의 단짝 수비수 곽태휘의 이마를 빛냈던 것이다.

 

상대가 따라붙었을 때 당황하며 팀 전체의 포지션 밸런스를 잃거나 선수 개인의 심리적 안정 상태가 깨지게 되면 결국 그저 그런 팀이나 선수로 전락할 우려가 있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를 훌륭히 이겨내고 상대 선수들에게 붉은 옷 만큼이나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문지기의 실수를 잊게 만든 동료들의 아름다운 동점 + 역전골

 

형들의 완승 소식이 전해지고 약 한 시간 뒤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있는 MHSK 스타디움에서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주관의 16세 이하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 두 번째 경기가 열렸다. 그 두 팀은 아시아 축구의 영원한 맞수 한국과 일본의 어린 선수들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결승 진출 소식이 실린 아시아축구연맹 공식 누리집(www.the-afc.com)
우리 선수들의 결승 진출 소식이 실린 아시아축구연맹 공식 누리집(www.the-afc.com)아시아축구연맹

 

이광종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 51초만에 일본의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문지기 권태안의 실수로 상대팀 주장 우치다 타츠야에게 먼저 골을 내주고 어리둥절했다.

 

어쩌면 이렇게 일찍 골을 내준 것이 이 어린 선수들에게 '약'이 되었나 보다. 우리 선수들은 부지런한 미드필더 김동진(안동고)을 중심에 두고 짧고 빠른 연결을 통해 반격을 시작하여 곧바로 2분만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전남 유스(광양제철고) 소속의 골잡이 이종호가 오른쪽 측면을 열고 낮게 깔리는 찔러주기를 넣어주었을 때 반대쪽에서 달려들던 미드필더 김동진이 시원스럽게 그물을 흔든 것. 미드필더와 골잡이가 함께 뛰는 조직력이 아름다운 동점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한숨을 돌린 우리 선수들은 내친김에 26분, 결승행을 결정짓는 역전 결승골을 뽑아냈다. 일본의 어정쩡한 세트 피스로 실점한 것을 정말 제대로 되갚아주는 통쾌한 장면이었다. 한 마디로 '세트 피스는 이렇게 엮는거야'를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상대 벌칙구역 반원 밖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은 우리 선수들은 '김진수(용인 FC)-남승우(부경고)-이강(뉘른베르크)'으로 이어지는 그림같은 삼각 패스 구도를 만들어냈다. 일본 수비수들의 오프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고 공을 잡은 이강은 회심의 오른발 슛을 날렸고 이 공이 왼쪽 기둥에 맞고 나오자 달려들던 수비수 이동녘이 이를 침착하게 때려넣었다.

 

축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1의 결과였지만 경기 초반 흔들리는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한 골 한 골 보태며 상대에게 강팀으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준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한판이었다. 단순히 운이 따른 역전승이 아니라 훈련 과정에서 익힌 조직력을 맘껏 발휘하며 뽑아낸 두 골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18일 저녁 장소를 파흐타코르 스타디움으로 옮겨서 UAE를 3-0으로 물리치고 올라온 이란과 우승컵을 놓고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2008.10.16 15:01 ⓒ 2008 OhmyNews
조용형 김동진 월드컵예선 AFC U-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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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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