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번트그 때 그의 배트를 맞고 3루쪽 파울선을 따라 나란히 굴러간 공은 내야안타가 되어 동점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살아나간 김재박은 결국 한대화의 홈런이 터졌을 때 홈을 밟으며 결승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KBS 화면 캡쳐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에 극적으로 역전승했던 그 대회 최종전을 기억하는 이들은 제일 먼저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6회까지 일본 선발 스즈키에게 노히트노런으로 눌린 채 0-2로 끌려가다가 김정수의 2루타로 한 점을 만회하고 다시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켜 1사 3루의 찬스가 이어진 8회말.
타석에 선 김재박이 스퀴즈를 예상하고 멀리 빼는 공을 향해 뛰어오르며 번트를 대는 기상천외한 장면을 연출했던 바로 그 순간을 말이다.
그 때 그의 배트를 맞고 3루쪽 파울선을 따라 나란히 굴러간 공은 내야안타가 되어 동점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살아나간 김재박은 결국 한대화의 홈런이 터졌을 때 홈을 밟으며 결승득점을 만들어냈다. 김재박의 천재성이었느냐, 아니면 사인미스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느냐를 놓고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도 한 그 상황은, 분명 80년대 이후 우리 야구사에서 손에 꼽힐 수 있는 명 장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김재박은, 한 해 전 불어닥친 박노준의 선린상고 열풍과 그 해 초 개막한 프로야구의 열기 속에서 야구라는 스포츠에 서서히 빠져 들어가던 소년들의 가슴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을 그 대회 내내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잡아낸 땅볼을 1루로 송구하는 동작으로 상대편 3루 주자를 기만해 홈에서 잡아내는 유격수였고, 상대 외야수가 잠시 방심하는 틈을 타 평범한 안타로 2루를 점령하는 주자였다.
그 무렵 그의 플레이를 보고 흥분한 마음으로 동네 공터로 달려가면 이미 이심전심 모여든 아이들이 편을 갈라 야구경기를 시작했고,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투수를 하겠다고 싸우던 꼬마 녀석들이 이번에는 유격수자리를 놓고 육박전을 벌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 무렵부터 다이빙캐치를 한답시고 무수히 옷을 찢어먹었고, 주자도 오지 않는 비어있는 2루에 '백핸드토스'를 하며 어이없는 에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면 다 똑같은 '야수'라는 생각은 김재박에 의해 깨졌고, 우리는 '유격수'라는 또 하나의 포지션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출발, 눈부신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