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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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년,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계승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제국의 지도자를 의미)들은 흩어졌던 부족을 통합하고,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일대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정하며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설립한다. 이슬람교 탄생 약 130년 만에 이슬람 제국은 왕성한 영토 확장을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고, 자연히 이슬람교의 세력 역시 크게 확산됐다.
무슬림 상인들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활발한 교역활동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무슬림 상인들의 영향으로 훗날 동남아시아 일대에 이슬람교가 확산됐고, 이들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까지 이른다.
한국사에서 이슬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시대부터이며, 고려 때는 수도 개경에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고려가요 <쌍화점>에는 당시 이슬람인을 의미하는 '회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은, 단지 종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라비아 숫자와 수학, 알고리즘, 연금술, 커피와 사프란 등 식문화, 현대 통기타의 원조로 꼽히는 현악기 우드에 이르기까지, 알고보면 아랍어나 아랍문화에서 그 기원을 두고 해외로 전파된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이처럼 이슬람 교인은 활발한 대외 상업 교역 활동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유산들을 남겼다. 이러한 이슬람 교인들의 영향력을 두고 대표적인 운송 도구로 활용한 낙타에 빗대어 '이슬람은 낙타가 키운 종교'라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슬람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은 엄격한 교리를 강조하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적인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라마단(Ramadan)은 이슬람의 주요한 종교적 의무 중 하나로, 이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금식은 물론 술·담배와 성생활까지 엄격하게 자제해야 한다. 또한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최고 경전인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학설이 분분하다. 타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이슬람교도들은 이를 두고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을 올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지침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오늘날까지 이슬람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인식 중 하나는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현대에서도 남녀 차별이 만연하고 있으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히잡' 착용을 통하여 여성의 신체 노출이자 사회활동을 제약하거나, 어린 소녀들이 나이 많은 남성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는 '조혼' 등은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남녀 차별 악습으로 꼽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슬람교에서 숭상하는 꾸란에는, 오히려 여성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모와 친척들이 남긴 몫에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합당한 몫이 있노라"며 여성의 상속권을 보장한 구절이 대표적이다.
본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랍권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며 개인재산 소유도 불가능했다. 초기 이슬람교는 꾸란을 통하여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지위를 향상해 줬을 만큼 당대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변화한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꾸란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만' 적용할 것을 강요하면서, 이슬람교 율법은 남녀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왜곡되기에 이른다. 이슬람권에서는 히잡 착용에 저항하는 여성들이 남성들이나 공권력에 의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끔찍한 테러까지 당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꾸란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