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원> 영화의 한 장면
<레드 원>영화의 한 장면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사악한 마녀 그릴라(키어넌 십카 분)가 북극 세계의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산타클로스 닉(J.K. 시몬스) 분)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북극의 보안책임자인 칼럼(드웨인 존슨 분)과 신화 세계를 보호하는 기관 M.O.R.A의 국장 조이(루시 리우 분)는 산타 납치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악명 높은 현상금 사냥꾼인 잭(크리스 에반스 분)을 잡아서 조사한다. 크리스마스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적들이 나타나자 칼럼과 잭은 산타를 구출하기 위한 협동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은 무수히 많다. <멋진 인생>(1946), <크리스마스 스토리>(1983), <나 홀로 집에>(1990), <머펫의 크리스마스 캐롤>(1992),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그린치>(2000), <엘프>(2003) 같은 영화는 크리스마스의 밝고 따뜻한 메시지를 포착하며 지금까지 사랑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크리스마스 혹은 산타클로스를 파괴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산타클로스와 요정으로 분장하고 대형 쇼핑몰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들이 등장하는 <나쁜 산타>(2003), 자신을 죽이러 온 킬러들에 맞서는 산타클로스를 그린 <산타킬러스>(2020), 부유한 가정에 침입한 용병을 산타클로스가 응징하는 <바이올런트 나잇>(2022)이 대표적인 사례다.

<레드 원> 역시 크리스마스 신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우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주제, 스타, 마케팅 가능성을 결합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는 '하이 콘셉트'가 돋보인다. 메가폰은 <쥬만지: 새로운 세계>(2017)로 9억 9천만 달러, <쥬만지: 넥스트 레벨>(2019)로 8억 달러에 달하는 메가 히트를 기록한 제이크 캐스단 감독이 잡았다.

각본은 막대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 중 3~8편과 스핀오프인 <홉스&쇼>(2019)를 집필한 작가 크리스 모건이 썼다. 납치된 산타클로스를 구하러 '더 록' 드웨인 존슨과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나선다. 제작사인 아마존 MGM 스튜디오는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라 판단했는지 2억 5천만 달러란 거액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레드 원>의 세계는 현실과 신화적 존재뿐만 아니라 산타클로스로 대표되는 밝은 판타지 세계와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 니콜라스의 정반대의 모습인 악마 크람푸스로 대표되는 어두운 판타지 세계가 뒤섞였다. 마치 <해리 포터>의 세계관을 보는 기분이다. 신화 세계를 보호하는 국제기구와 요원들이 사용하는 각종 장치와 무기는 <맨 인 블랙>을 참고한 인상이 짙다.

제이크 캐스단 감독은 "북극이 '진짜'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제껏 본 적 없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연출 계기를 밝힌다.

어디선가 많이 봤는데...

<레드 원>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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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원>은 이상한 방식으로 현실적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산타클로스가 지내는 북극은 동화 속 마을이 아니다. 외부의 노출과 공격을 막는 돔 아래 존재하는 현대적인 대도시로 묘사한다.

돔의 내부는 군대를 비롯한 자체 방어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다. 일명 '레드 원'(미군에서 국가원수급 인사를 지칭하는 암호명이 '코드 원'이다)으로 불리는 산타클로스는 경호원들이 지키고 그가 탄 썰매는 전투기의 호위를 받는다. 마치 미국의 대통령을 보는 느낌이다. 이처럼 군사적 색채가 강한 데다 CIA를 닮은 신화 세계를 보호하는 기관에 잡혀 온 잭이 어떤 사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장면에선 미국 예외주의까지 엿볼 수 있다.

<레드 원>은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다. 미국의 종합 인터넷 플랫폼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아마존닷컴은 2021년 미국의 영화 제작, 배급사인 MGM을 인수해 아마존 스튜디오의 자회사이자 산하로 편입시켰다. 2023년 모회사 아마존 스튜디오는 아마존 MGM 스튜디오로 사명을 바꾸었다.

아마존에서 제작한 영화라 그런 걸까? <레드 원>은 현대 크리스마스에 만연한 상업화,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구석이 가득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산타클로스는 대형 쇼핑몰에 앉아 쇼핑객에 둘러싸여 있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에게 최신 게임기를 사달라고 아우성이다. 후반부에 산타클로스는 흡사 아마존의 배송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아이들에게 상품을 배송한다. 그런 모습엔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은 고사하고 기업 독점과 탐욕만이 남았을 따름이다.

<레드 원>은 어디선가 보았던 장면의 연속이다. <블랙 팬서> 시리즈에서 보았던 돔 형태의 국가, <앤트맨> 시리즈에서 나왔던 사물이나 사람이 커지고 작아지는 걸 활용한 액션,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에 활약한 크리스 에반스가 DC의 원더우먼만을 찾는 개그 등 슈퍼히어로 장르를 활용한 패러디적 연출은 식상함만 더한다. <반지의 제왕>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잘 섞어서 신선한 맛을 낸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2023)의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러닝 타임은 124분으로 다소 길어 중간엔 지루하기까지 하다.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이 될 확률은? 전혀 없다. 그저 또 한 편의 '양산형 드웨인 존슨 영화'일 뿐이다.

영술랭 가이드 별점: ★(보든 안보든 상관이 없다)

<레드 원> 영화 포스터
<레드 원>영화 포스터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드웨인존슨 크리스에반스 루시리우 레드원 제이크캐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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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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