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제게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 당시에는 저를 왜 싫어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유가 없었다. 그냥 싫은 거다. 싫다는데 어떡하겠나.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라고 결심하게 됐다."

정해인의 고백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9일 방송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정해인이 출연하여 자신의 연기와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정해인은 최근 영화< 베테랑2 >에서는 섬뜩한 소시오패스 악역으로 , 로맨스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서는 다정다감한 엄친아를 연기하면서 각기 상반된 매력을 선보였다.

정해인은 < 베테랑2 >의 흥행을 두고 "방송이 나갈때 쯤 관객의 앞자릿수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송일 기준으로 벌써 무대인사만 200회를 넘겼다는 정해인은, 10월 중순 마지막 무대인사를 마치면 선배 배우인 정우성이 보유한 232회의 무대인사 올출석 기록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정해인은 "하루에 15-20관 정도 무대인사를 다닌다. 오전 11시쯤에 시작하면 오후 7시 정도가 되어 끝난다. 힘들긴 하지만 너무 행복하게 하고 있다" 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 홍보를 위하여 공연한 선배 배우 황정민과 <아침마당>에도 출연했던 정해인은 "지각인 줄 알고 아침에 황급히 일어나다가 담이 걸릴 뻔했다. 공포의 순간이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아침마당>에서 정해인은 방송 중 갑자기 나타난 모기를 맨손으로 잡는 등 의외의 엉뚱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생애 첫 악역의 무거움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 베테랑2 >에서 생애 첫 악역을 연기한 경험에 대하여 "엄청난 부담이었다"면서도 "부담스러워만 하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으니까, 결국 받아들이고 오롯이 혼자 헤쳐 나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극 중 나르시시스트의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빌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하여 한동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제했다고. "부모님조차 도 저를 낯설어하셨다."고 회고한 정해인은 "황정민 선배와 함께 의논하면서 열심히 연기했던 보람이 있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노력의 결실은 헛되지 않았다. < 베테랑2 >는 국내에서의 흥행몰이는 물론, 칸 영화제까지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정해인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했고 안 떨려고 애썼으나 그러지 못했다.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손이 파르르 떨리더라. 큰 해외 영화제가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다"며 쑥스러워했다.

배우와 가족들이 함께 초청받은 칸영화제에 어머니와 동행하는 문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사실 처음에 정해인은 어머니와 영화제에 동행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다. 평소 어머니가 어디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몹시 싫어한다는 정해인은, 선배 황정민의 진심어린 충고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정해인의 고민을 들은 황정민은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불효하는 거다. 어머니가 하고 싶어하시는 대로 놔둬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민하던 정해인은 몇 차례의 실랑이가 오고 간 끝에 결국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칸 영화제에 함께 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해인은 "2024년도 제가 가장 잘한 일이었다. 배우 인생에서도 손꼽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낙방 거듭한 시절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정해인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이자 위인인 다산 정약용의 직계 6대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해인 본인도 이 사실이 공개된 이후 행동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인은 "요즘 유투브나 온라인을 보면 제 알고리즘에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뜨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명문가 엘리트의 혈통을 이어받은 반듯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는, 배우 정해인 특유의 '엄친아' 캐릭터를 확립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 베테랑2 >에서 함께 작업한 류승완 감독은 정해인을 가리켜 "흐트러짐이 없는 재수 없는 젊은이"라고 독설을 가미한 극찬을 날리기도 했다.

어느덧 데뷔 11년 차가 된 정해인이지만 정작 어린 시절에는 "배우의 꿈을 꾼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의외의 사실을 고백했다. 정해인은 "늦게 시작했다보니 대학에서 기본기를 배웠다. 군복무를 마친 후에야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려했는데, 너무나 막연하더라"고 회상했다.

무명 시절에 오디션을 볼 때마다 낙방을 거듭했다는 정해인은 한 오디션에서의 웃픈 일화를 털어놓았다. 오디션을 실망스럽게 마친 정해인은 왠지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다른 참가자들의 순서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기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함없이 낙방이었다.

정해인은 "그때 앞으로 연기할 때 정말로 열심히 준비해서 후회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유재석은 "현명한 생각이다. 거기서 느낀게 이것 이었기에 지금의 정해인이 있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절치부심한 정해인은 그렇게 많은 오디션을 거쳐 27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대중에 눈에 띄기 시작한 시절

정해인은 < 응답하라1988 >, <도깨비>등에서 여주인공의 '첫사랑' 전문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슬기로운 감빵생활>등의 화제작을 통하여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점차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는 데뷔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며 매니저에게 외제차를 선물한 미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사코 선물을 만류하는 매니저를 간곡히 설득하기도 했다. 정해인은 "돈을 번 후에 부모님보다 먼저 매니저에게 선물을 했다"고 밝히며 어려운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준 매니저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드러냈다.

정해인에게 연기에 관한 솔직한 직언을 가장 많이 해주는 인물은 7살 연하의 친동생이라고. 정해인은 "어제도 이야기를 들었다. <엄친아> 드라마를 보면서 형이 하관을 너무 많이 쓴다고 하더라"고 털어놓으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정해인은 "그런걸로 상처받는 타입은 아니다. 주변에서 지적해 주면 신경은 쓰이지만,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다. 그때부터 고치면 되니까"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드러냈다.

정해인은 2018년 손예진과 공연한 로맨스 드라마 <밥잘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귀엽고 다정한 연하남의 매력을 선보이며 마침내 본격적인 '정해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당시 제가 31세였는데 굉장히 운이 좋았다. 손예진 누나의 도움과 안판석 감독님의 연출이 컸다. 캐스팅된 것 부터가 기적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성공의 후유증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하지만 <예쁜 누나>의 대성공은, 정해인에게 생각지 않은 후유증도 안겨줬다. 정해인은 "체력적인 문제가 제일 컸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주목을 받다 보니 몸에 과부하가 왔다. 불면증도 심했고, 그 당시에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의외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데뷔 4년 만에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얻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다보니 단단해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정해인의 회고였다. 주변의 평가에 민감해지면서 한때는 "악플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정해인은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왜 살아가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당시에 자신을 향한 악플을 하나하나 다 읽으며 '나한테 왜 이러지'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정해인은 한동안 집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형으로 지내보기도 하고, 심지어 공황장애 증상까지 겪었던 시절을 털어놓았다.

고민끝에 정해인이 내린 결론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관심없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때는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집착했다는 정해인은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해답을 얻었다.

힘든 시기를 극복한 정해인은 탈영병과 군내 부조리 문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 < D.P >를 통하여 재기하며 연기 인생에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정해인은 "< D.P > 이후 남성팬들도 많이 생겼다. 또한 <서울의 봄>과 < 베테랑2 >에서도 출연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군인-경찰에서 심지어는 죄수복(?)에 이르기까지 유니폼이나 제복이 유난히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나랏밥룩의 정석'이라는 호평을 얻기도 했다.

정해인은 20대 시절을 회고하자 역시 무명 시절의 서러운 기억을 곧바로 떠올렸다. 현장에서 "저렇게 연기 못하는 애를 누가 데려왔냐"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일부러 못 들은 척하기도 했다. 정해인은 의기소침해지는 대신 "칼 갈고 열심히 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하여 현재의 자신이 가장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유퀴즈>에도 나오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이라고 현실적인 답을 전했다. 이어 "그래서 저는 신인들에게 더 장난치고 편하게 해주려고 한다. 공기가 편해져야 그 친구도 잘할 것이고 작품도 사는 거니까"라며 이제는 어느덧 성숙한 선배로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유재석은 공감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제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해야한다."며 연차와 경험이 쌓여갈수록 커져가는 책임감의 무게를 언급했다.

지금도 영화 무대인사에서 해외 팬 미팅 준비까지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해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연기만이 아니라) 홍보까지가 주연배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또 제가 가는 것"이라는 소신을 드러냈다.

정해인은 "힘들고 자존감이 낮아졌을때도, 가족들이랑 팬분들 덕에 버틴게 컸다. 묵묵히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이 계시다는걸 늘 잊지 않으려고 한다"며 소중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최근 외할머니의 건강 이상으로 누구보다 걱정이 컸을 어머니를 위로하며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애틋한 메시지를 전하여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유퀴즈 정해인 베테랑2 엄마친구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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