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잘될 거야> 스틸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이 고민을 담은 영화가 있다. 동성결혼이 불가능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려냈다. 영화 <모두 다 잘될 거야>(원제: 從今以後, All Shall will be well)는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레즈비언 부부 중 한 사람의 예상치 못한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을 그린다.
홍콩에 사는 60대 중반의 부유한 레즈비언 커플 '팻'과 '앤지'는 서로를 돌보며 살아간다. 두 사람은 친척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에게 모두 커밍아웃도 마쳤다. 명절도 함께 보내며 친척들 역시 둘의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웃의 성소수자 친구들과 교류하며 노후 준비도 착실히 하고 있다. 홍콩은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아서 법적인 부부가 아닐 뿐, 겉보기엔 화목한 '가족'과 다름없다.
그러던 어느 날, 팻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친척과 앤지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장례 방식에서 갈등이 생긴다. 친척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팻의 유해를 납골당에 모시고 싶어 했지만, 앤지는 팻이 생전에 바다에 잠들기를 원했다고 맞서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법적 부부가 아니기에 앤지에게 장례를 통제할 권리가 없어 장례식에서도 친척의 뒷자리로 물러나야만 했다. 납골당의 직원이 고인과 앤지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도, 친척으로부터 '가장 친한 친구'라고 지칭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팻의 명의로 돼 있던 아파트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침 결혼을 앞둔 조카에게 새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홍콩의 집값은 비싸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친척들은 고인이 떠나 혼자 남겨진 아파트를 자신들에게 양보하기를 기대한다.
앤지로선 평생을 함께 살아온 집을 쉽게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집 역시 팻의 명의로 된 유산으로, 앤지에게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친척들과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진다. 아무리 사실혼 관계의 부부여도 법적인 인정이 없다면 혈연중심주의 제도에서 일방적으로 소외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재산을 놓고 싸우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 같이 몸싸움, 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성소수자로서 겪게 되는 가족 안에서의 소외와 차별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엮어낸다. 또한 섬세한 각본을 통해 오늘날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홍콩의 현실과 부동산 문제, 노후, 경제 불안정 등 사회 시스템을 드러낸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 성소수자들의 마주한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한 전개는 공감대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두 노년 남성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아저씨 X 아저씨>(원제: Suk Suk)(2019)을 연출한 레이 영 감독의 신작으로, 2024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초청, 최우수 장편 퀴어영화 작품상인 '테디상'을 수상했다. 오는 11월 8일 개막하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돼 상영을 앞두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원고인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유지영
나는 2024년 10월 10일,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로부터 받은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에 적힌 사유를 거부하며, 성별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을 꾸린 '부부'임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이 소송엔 우리를 포함한 결혼을 반려 당한 열한 쌍의 커플이 원고로 참여한다. (관련기사:
평등 소송 나선 동성 부부 11쌍 "동성혼, 시급히 먹고 사는 문제")
아시아 국가 중에서 대만과 태국 등에서 동성결혼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일본, 홍콩에선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은 혼인평등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선 일어나고 있다. 미래를 고치기 위해 원고로서 할 수 있는 건, 거절당할 용기로 혼인신고한 마음이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내길 바라는 일이다. 이 긴 여정을 앞두고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마음을 담아, 국가의 지연된 응답을 두 손 모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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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도시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진행하며, 에세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