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가 27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라바흐와의 2024-25 UEFA 유로파리그 리그 페이즈 1차전에서 경기 중인 모습.
EPA=연합뉴스
다른 유명 한국 선수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지성의 맨유 시절 응원가로 유명한 '개고기송'은 사실 동양인들이 개를 식용으로 먹던 식문화를 비하하는 조롱에 가까운 노래였다. 박지성은 현역 시절 개고기송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인종차별적인 성격이 강한 응원가를 부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축구의 간판스타 손흥민도 여러 차례 경쟁팀 팬들에게 인종차별의 표적이 됐다. 2018년 웨스트햄과의 경기 도중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던 웨스트햄 팬이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맨유 팬들이 단체로 손흥민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트윗을 올려 경찰 수사를 받고 선수에게 사과 편지를 쓰게 한 사건도 있었다. 2022년에는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 발언을 한 첼시 팬에게 경기장 영구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심지어 손흥민은 몇 달 전에서는 팀 동료인 로드리고 벤탄쿠르(우루과이)로부터 동양인 비하 발언을 들었다. 벤탄쿠르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손흥민의 유니폼을 구해달라는 MC의 부탁에 우스갯소리로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줘도 모를 거다. 그들(아시아인)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아시아인의 외모에 대한 우루과이인들의 인종 차별성 인식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벤탄쿠르는 SNS에 사과문을 올렸고, 손흥민도 벤탄쿠르와 대화 이후 그를 용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토트넘 구단은 벤탄쿠르에 대하여 재발장비와 교육 강화만 약속했을 뿐, 어떠한 공식 징계로 내리지 않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명선수인 손흥민이나 황희찬을 둘러싼 인종차별 사건은 널리 공론화가 되기라도 했지만, 이외에도 한국이나 아시아 선수들을 표적으로 한 인종차별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인종차별' 근본적 문제 해결하려면
과거에는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인종차별 이슈에 대하여 개개인의 불운한 사건으로만 치부하거나, 지나치게 점잖은 대응으로 일관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어떨까. 올해만 해도 비니시우스(레알 마드리드, 브라질), 마이크 마이냥(AC밀란, 프랑스), 케이시 팔머(코벤트리시티, 잉글랜드)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인종차별 이슈를 겪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 선수들의 점잖은 대응은 유럽에서 아직은 소수 집단에 가깝다는 점과 '축구로 인정받으면 인종차별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인식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섣부른 관용이나 침묵이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인종차별은 벌어진다. 특히 오늘날에는 쿠르토나 벤탄쿠르의 사례처럼, 사소한 농담이나 해프닝으로 위장한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같은 미묘한 일상 속 인종차별 행위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고 당장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건 장기적으로는 인종차별을 묵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해외에서 뛰는 한국 선수의 인종차별 피해 사건에 대해 FIFA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건, 황희찬의 사례가 처음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선수들도 같은 아시아 선수들이나 각국 협회 등과 연대하여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명 선수들일수록 인종차별 문제에 회피하거나 침묵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서 개선을 요구해야만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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