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인해 내 부모님은 타지에서 각자 맞벌이 생활을 하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밤이면 밤마다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외로움과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MBC '신해철의 밤의 디스크 쇼'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5일 나는 고인이 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가수 신해철씨의 추모를 위해 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우리 형, 신해철>에 출연할 수 있었다.

방송 중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그 당시 나는 매일 같이 삼시 세끼마다 식전 기도를 했는데, 하나는 가정의 회복이었고 또 하나는 가수 신해철을 꼭 한번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당시엔 만나고 싶다고 떼쓴다고 만날 수 있는 가수 신해철이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나거나 콘서트장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게 다였을 만큼 그는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만날 수 없는 가수 신해철의 노래를 다음 그의 신보 앨범이 나오지 전까지 매일매일 워크맨 건전지를 깨물어가며(알카라인 건전지에 충격을 주면 다 쓴 건전지를 좀 더 쓸 수 있었다) 들었다.

사춘기에 방황 시작

 MBC 다큐 <우리 형, 신해철> 관련 이미지.
MBC 다큐 <우리 형, 신해철> 관련 이미지.MBC

당시 내 꿈은 '나도 꼭 신해철처럼 대학가요제에 나가 유명 가수가 되어 라디오 DJ가 되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엔 요즘처럼 오디션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고 남들에겐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거기다 갑작스러운 가계의 몰락과 이룰 수 없는 꿈 사이에서 사춘기가 도래하자 나는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고교 2년 때는 재소자가 되고 말았다. 난생처음 겪는 인생 시련에 죽고 싶었고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퇴학 처리가 되어 있었다. 어떠한 희망도 없던 내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신해철씨를 한 번 만나볼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품는 것이었다.

이후 사회로 돌아와 공장에 취직을 했다. 각박한 현실에 어릴 적 꿈도 모두 잊고 살았다. 최종 학력 중졸의 아이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공장 식당에 있던 TV에서 대학가요제 참가자 모집이란 광고를 보게 됐고, 내 심장은 다시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가수 신해철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쯤 들었던 노래가 바로 신해철이 만든 넥스트의 <The dreamer>였다. 노래의 가사는 이랬다.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 넥스트 The being… 앨범 수록 -

신해철씨는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출신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딱 10년이 지난 1999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다. 수상을 못해서 가수나 DJ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결혼을 하고 회사를 퇴직, 창업을 해서 승승장구하며 살았다.

그러다 또다시 내게 위기가 찾아왔다. 창업 초기엔 회사의 건물까지 세우며 승승장한 회사가 7년 데스벨리를 넘기지 못하고 폐업을 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근데 그때 다시 생각난 사람이 바로 잊고 지내던 가수 신해철씨였고 그의 음악이었다.

 MBC 다큐 <우리 형, 신해철> 관련 이미지.
MBC 다큐 <우리 형, 신해철> 관련 이미지.MBC

이후 우연히 모 강연장에서 신해철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에게 사인을 부탁했는데 손이 덜덜덜 떨렸다. 사진 하나 찍자며 그가 자신의 손을 내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곤 그에게 부탁했다. 그의 곡 <아버지와 나 연주곡>을 이용해 SBS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라디오 DJ를 뽑는 오디션에 나가도 되냐고. 그는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DJ 오디션에 응시를 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6년여를 교통방송의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최호림의 즐거운 라디오
최호림의 즐거운 라디오한국교통방송

용기내 다큐 출연, 부디 편안하시길

하지만 꿈을 이룬 나와는 다르게 내 인생의 멘토였던 신해철씨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그는 내게 희망을 줬지만 나는 그가 어려울 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10주기 MBC 다큐멘터리에 용기를 내어 출연을 했다.

30년이 지난 이야기이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내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심어준 선한 영향력과 희망이란 이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부디 그가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내 허물을 드러내는 일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내가 이렇게 커밍아웃 한 이유는 바로 오직 신해철 때문이었다는 점.
신해철 최호림 라디오 대학가요제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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