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더 글로리’에 출연한 배우 박지아가 2023년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 항상 연기를 할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더라. 누가 보든 안 보든. '제가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시선을 사로잡던 강렬한 캐릭터 연기, 소소한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는 꼼꼼하고 섬세한 열정이 빛나던 한 명배우가 조금 일찍 우리 곁을 떠나게 됐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의 열연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박지아가 별세했다. 향년 52세.
고인의 소속사 빌리언스는 30일 "박지아님이 오늘 오전 2시 50분 뇌경색으로 투병 중 별세하셨다. 마지막까지 연기를 사랑했던 고인의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라고 밝혔다.
1972년생인 박지아는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한 이래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영화, 드라마까지 넘나들었다. 연극 <날 보러와요>·<와이프>, 영화 <기담>·<창궐>·<곤지암>·<숨>·<하이재킹>, 드라마 <광해, 왕이 된 남자>·<착하지 않은 여자들>·<굿와이프>·<손 the guest>·<붉은단심>·<클리닝업>·<더 글로리>등이 박지아를 대표하는 출연작들이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로 출연 분량은 많지않은 조연이었지만, 한번 본 대중들에게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을 발산하는 '신스틸러'로서 누구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렬한 캐릭터로 시청자에 각인
젊을 때부터 주로 '귀신-악역 전문 배우' 같은 강렬한 캐릭터로 유명해졌다. 여배우로서 확고한 개성파 이미지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한계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생전 박지아는 데뷔 이후 20년이 넘는 연기경력 동안 잠시 주목받았다가 공백기를 겪는 부침을 반복했다고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대작의 오디션에 합격하고도 유명 배우에게 배역을 빼앗기는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박지아는 꾸준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나이와 연륜을 먹어가면서 대체불가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정립하기에 이른다.
'광기를 지닌 듯 하지만, 알고보면 기구하고 비극적 사연을 지닌 여인'의 캐릭터 연기는 박지아만의 전매특허였다. 일반적이지 않고 날카롭고 강렬해보이는 이미지는, 작품 속 캐릭터가 대본을 뚫고 실제로 살아나온 듯 잘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기덕 감독과 작업한 데뷔작 <해안선>에서 박지아가 연기한 미영은 군사경계구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남자친구가 오인 사살당한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군인들에게 윤간당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김기덕의 작품 속 여성들이 대부분 그렇듯, 젊은 여배우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의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소화해낸 것은 데뷔작부터 박지아만의 남다른 존재감을 빛나게 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박지아는 김기덕 감독과 총 다섯 작품이나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다.
2007년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기담>의 아사코 엄마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아사코는 본인의 잘못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일가족을 몰살시켰다는 죄책감애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아사코의 꿈속에서 죽은 엄마가 피투성이가 된 혼령으로 나타난다.
아사코는 엄마의 혼령이 자신을 저주하고 원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사실 엄마가 전하려던 진짜 이야기는 "괜찮아, 아사코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였다. 엄마의 사랑을 깨닫고 아사코는 그제야 편하게 눈을 남는다.
처음에는 그저 기괴한 원령처럼 보였던 아사코 엄마 귀신의 진실이 드러나는 반전은, 국내 공포영화에서 가장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가슴 아픈 여운을 남긴 명장면으로 꼽힌다. 2023년 < 연합뉴스TV > 인터뷰에서는 당시 함께 촬영한 <기담> 제작진조차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박지아의 귀신 연기를 보고 무서워해 촬영이 중단됐다는 유명한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더 글로리> 동은엄마 역 위해 빨간 뚜껑 소주 직접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