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인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비롯, 전 세계적 열풍을 이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흔히 대중성 없다는 작은 단편영화제나 독립영화를 꾸준히 주목해온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 발굴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선 이 영화제들을 꾸려온 주체들 및 영화인들의 날 선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엔 영화인연대와 강유정, 김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소속한 국회 문화예술살롱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해 대비 올해 정부 산하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제 지원 예산은 약 52억 원에서 24억으로 절반 이상 삭감됐다. 지원 대상도 42개에서 10개로 줄었고, 지역 영화제 지원은 전액 삭감됐으며, 독립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또한 114억 원에서 67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된 상황이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이런 이유로 지역 영화제들이 인건비나 기타 비용을 줄여가면서까지 영화제를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영화제 존재 이유 분명, 그럼에도...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 한국독립영화협회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크게 예산이 줄었음에도 영화제를 이어가야 했던 상황에 대해 이승우 대구독립단편영화제 사무국장은 "한번 줄이면 다시 그 영화제를 이어가기 어렵기에 인건비나 운영비를 줄여가면서도 상영 규모를 줄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1년에 1300편 이상의 단편영화와 150편 이상의 장편이 만들어지는데 극장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이 영화들을 영화제들이 다 소화한다"고 지역 및 주요 영화제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무주 인구가 2만 3천명인데 영화제 기간에만 3만 5천명이 찾는다. 지역 주민을 위한 축제이기 보다 20, 30대 젊은 외지 관객들이 찾아주길 바라며 방향을 만든 영화제"라며 "이런 활기에 무주 군민들도 덩달아 관심갖고 어르신들도 사람 구경하러 영화제를 오는 등 군민 참여가 자연스럽게 늘었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올해 있었다"고 밝혔다.

공통적으로 영화제 측은 현 정부의 예산 삭감이나 조정이 충분한 근거나 설명 없이 진행됐음을 지적했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국내에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게 삭감의 표면적 이유였다"라며 "국내 영화제들이 150개에서 200개 정도로 추산되는데 FIAPF(국제영화제작자연맹)에서도 인정한 영화제의 산업 자산적 의미를 정부가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사무국장 또한 "영비법에도 지역영화발전이라는 근거가 있다. 정부는 지방보조금을 받으면 된다는 데 조례가 없는 이상 영화제가 지방보조금을 받는 자체가 힘들다"며 "기획재정부 입장은 지역 문화 재단이나 영상위원회에서 배정받으라는 건데 그 기관들의 지원 항목엔 영화는 아예 포함돼 있지 않다"고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조지훈 부집행위원장은 "(경제적 효과가 있음에도)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니 오는 사람들을 줄여야 하나 걱정"이라며 "국고 지원을 받으면 지자체 지원을 받는 데에 주요하게 작용한다. 중앙정보 돈이 빠지면 순차적으로 지역 예산 지원도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국내 주요 영화제 중 하나인 전주국제영화제 김성준 콘텐츠사업실장은 영화인들의 네트워킹 마련과 독립예술영화의 최후 보루 역할을 영화제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전주영화제가 출범한 2000년 당시 전통의 도시 이미지가 강했던 전주에 문화산업진흥원, 영상위원회, 영화제작소 등이 생기며 디지털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게 됐다"며 "전주영화제가 제작하고 지원한 영화 중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국제적 성과도 있다. 국고 지원이 없다면 지자체 필요에 따라 영화제 성격 자체가 크게 퇴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제는 단순 축제 아닌 산업 현장"

자신을 영화제 관계자가 아닌 배급업자라고 소개한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일화를 언급했다. 1999년 박 감독의 단편 <심판>을 배급했던 사연과 함께 김 대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감독님이 영화 관련 자료를 들고 오셨다. 단편인데도 뭘 그렇게 열심인가 싶었는데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게 되셨다"며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들>도 우리가 배급했는데 칸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을 모두 영화제에서 발견했고 추천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난숙 대표는 "왜 영화제를 축제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정작 관계자들은 그 안에서 매우 바쁘다. 투자, 마케팅, 배급 사업과 다 연계가 되기 때문"이며 "한국 사회 내 다양한 구성원들과 그 이야기를 전하는 첫 번째 창구가 영화제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극장에 영화를 소개하게끔 처음으로 작품을 만나는 곳이 영화제인데 이 정부가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지 예산 삭감에서 실감하고 있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과 성토에 김지희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영화인들의 걱정을 문체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영화제의 재정자립도를 살폈는데 미달하는 곳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맞는지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대폭 삭감 이유를 설명했다.

김지희 과장은 "내년도 영화제 예산은 이미 밝힌대로 올해보다 5억 증액된 33억 원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영화산업이 위기인 게 사실인 만큼 내년엔 중예산 영화를 살리는 데에 집중하겠다. 영화제 예산 5억 증액이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지원 영화제도 11개에서 15개 내외로 늘리는 걸 검토 중"이라 덧붙였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현장. ⓒ 성하훈


하지만 이 해명에 반론도 있었다. 현장을 참관한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장은 "11개에서 15개로 늘린다는데 그 숫자는 과연 누가 결정했는지 궁금하다"며 "정부 예산안은 나와 있고, 국회로 공이 넘어갔는데 여기 참석하신 (강유정, 김현, 추미애) 의원님이 증액을 주장하면 문체부도 받을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또한 백재호 협회장은 "중저예산 영화 지원은 우리가 바란 게 아니다. 사실상 상업영화 지원인데 독립영화 지원은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에 김지희 과장은 "일단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간 논의 결과 11개 영화제(발언상 오류다. 문체부는 10개 영화제를 지원했으며, 나머지 1개는 영진위와 공동 주최인 서울독립영화제다 - 기자 주)만 지원한 것에 아쉬움이 있다고 한 만큼 일단 15개 내외로 정한 것"이라며 "국회 논의에서 변수가 있다면 당연히 숫자는 바뀔 수 있다. 독립영화 예산은 기획개발 부문에서 10억 원 증액 예정인데, 우리가 신경 쓴다고 하지만 예산 따기가 녹록하진 않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시작부터 끝까지 강유정, 추미애,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강유정 의원은 "현 정부 들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게 영화제라 생각한다. 한국영화의 미래인 영화제 없이 황동혁, 봉준호 감독이 왜 나올 수 없는지 설득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이날 토론회를 자평했다. 추미애 의원은 "윤 정부 대폭 예산 삭감에 영화제도 포함됐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며 "세계적으로 우리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점에 정책이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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