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웨이 아웃’ 스틸컷
‘노 웨이 아웃’ 스틸컷디즈니+

이렇게 달콤한 유혹이 또 있을까. 투자 사기를 당한 형사 백중식(조진웅)은 자기 삶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무리 뒤져도 사기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시작된 무너진 삶은 사건만 해결하면 한 번에 복원될 것 같았지만, 실마리가 하나둘 모습을 감추자 점점 초조해진다. 중식은 이 지옥 같은 하루가 영원히 반복될지 모른다는 악몽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아는 눈치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 나타난 현금 10억 원을 모른 척하기 힘든 이유다. 중식이 아닌 누구라도 손을 댈 만한 유혹이다.

디즈니+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희대의 흉악범 김국호(유재명)에게 걸린 200억 원의 공개 살인 청부 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국호는 살기 위해, 형사들은 폭력 사건을 막기 위해, 호산시장 안명자(염정아)는 재선을 위해, 변호사 이상봉(김무열)은 재건축 진행을 위해, 도축업자 윤창재(이광수)는 현상금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중식은 유혹에 넘어간 자신의 선택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한다. 이들의 고민에 대의나 윤리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욕망을 위해 벌이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만 있다.

전통 악인 벗어난 캐릭터들

 ‘노 웨이 아웃’ 스틸컷
‘노 웨이 아웃’ 스틸컷디즈니+

일상의 감각이 어딘가 어긋난 악인으로 가득한 이야기다. 하지만 <노 웨이 아웃>은 김국호를 제외한 인물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전통적인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중식이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시간을 들여 설득한 것처럼 인물들이 벌이는 상식 밖의 행동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처럼 그린다. 개인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한순간 선택으로 얻는 보상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설명하며 이해시킨다. 처음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서 마치 범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 선택들은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나중엔 멈출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노 웨이 아웃>은 옳지 못한 방식으로 과한 욕심을 부린 이들을 징벌하듯 끔찍한 처벌을 내리며 무대에서 퇴장시킨다.

자극에 둔해지는 건 등장인물들만이 아니다. <노 웨이 아웃>을 지켜보는 시청자도 인물들이 언제부터 선을 넘었고,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일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중식이 유혹에 넘어간 10억 원의 스무 배인 200억 원이 현상금으로 걸린 순간부터는 마치 이 세계에선 어떤 행동도 가능한 것처럼 그려진다. 김국호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 유가족과 김국호의 가족마저 무대 위로 끌어들이며 시청자를 범행의 공모자로 만든다. 김국호를 죽이려고 온갖 무기를 손에 쥐고 급하게 달려온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은 <노 웨이 아웃>을 감상하는 시청자를 거울처럼 비춘 듯하다. "저 짐승 새끼 하나 죽이자고 똑같이 짐승이 될 거야?"라는 중식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노 웨이 아웃>은 누구나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자기변명과 거대한 보상 앞에선 어떤 행동도 용인될 것 같은 착시를 심어놓는다. 그 착시는 우리 사회에서 하지 말아야 할 범죄의 개념을 희석하고, 시청자들을 죄책감과 정의의 영역에서 해방시킨다. 그리고 법과 질서가 무너진 공간을 다양한 욕망과 피 튀기는 자극으로 채워 넣는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건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다. 죄책감 없이 강한 자극을 즐기도록 유도한 <노 웨이 아웃>은 도파민에 절인 듯 더 달콤한 보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그것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선을 긋는다. 오히려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마무리하며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결말로 유도한다.

'김국호'를 '죽이면' '200억 원'을 준다는 게임의 규칙은 우연히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가면남은 몇 번을 돌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룰렛으로 자신의 의도를 은폐했다. 처음부터 정해진 출발점이 마치 우연으로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 <노 웨이 아웃>은 출발점이 정해진 게임이 공정한 것처럼, 이미 짐승이 된 이들을 아직 사람인 것처럼, 악인들의 욕망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가린다. 가림막을 치우자 해소되지 못한 욕망만 남아버린 불편한 결말을 통해 <노 웨이 아웃>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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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쿠키뉴스 기자 joynow@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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