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컨셉포토
쏘스뮤직
첫 번째 조건인, 좋은 음악은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분명 < CRAZY >는 올해 발매된 케이팝 곡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스타일리쉬한 작품이다. 테크 하우스(Tech House)를 뼈대 삼아 퐁크(Phonk)의 맛을 살짝 버무리는 솜씨가 놀라운 수준이다. 장르 특유의 사운드 텍스처를 세련되게 구현하면서도 케이팝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이식해냈다. 이전까지 선보여온 라틴-힙합과 차별화되는 댄스 뮤직을 본격적으로 차용해 팀의 음악색을 확장하는 영리한 전략이 돋보인다. 일부 트랙은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과 작업했던 프로듀서 블러드 팝이 곡 작업에 참여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좋은 곡'이 전부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르세라핌에 더 중요한 건 기존의 독기 콘셉트를 대체할 새로운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르세라핌의 '독기' 콘셉트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모순이 있었다. 가사는 피나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그룹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현실 속의 르세라핌은 하이브라는 초대형 기획사의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리한 입지에서 출발한 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라이브 실력 논란까지 더해져 일부 대중은 '(르세라핌이)진짜 노력을 한 건 맞나' 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게 르세라핌의 기존 '독기' 콘셉트는 설 자리가 빈약해졌다.
그렇기에 콘셉트 '수정'이 아니라 '교체'가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팀을 끌고 나갈 새로운 테마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르세라핌이 빌려온 키워드는 바로 '키치(Kitsch, 익살스럽고 개성적인 패션 혹은 감성을 이르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 기자 말)'다.
이번 앨범에 드러난 '키치함'은 나쁘지 않았다. 콘셉트 포토 속의 전류 표현이나 정전기로 뻗친 머리, 과장된 표정, 쨍한 색감의 의상들로 20세기 미국 B급 공포 영화를 일부 시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한편 '피카츄', '오타쿠' 등의 단어들을 가사에 대놓고 등장시키고, 일본인인 카즈하가 후렴구의 'girl'을 '갸루'처럼 발음하는 등 일본의 서브컬처를 떠올리게 했다.
르세라핌은 미국과 일본의 B급 서브컬처들을 두루 아우르며 키치함을 정조준했지만, 일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뻣뻣해 보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다 할 오리지널리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이번 르세라핌의 콘셉트를 보면 레드벨벳의 < RBB >나 찰리 XCX (Charli XCX), 차펠 론(Chappell Roan), 에스파 등 수많은 국내외 아티스트의 콘셉트가 겹쳐 떠오른다. 결국 르세라핌만의 캐릭터성을 구축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모양새다.
실력 입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