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여름날의 거짓말> 스틸컷
㈜마노엔터테인먼트
사고뭉치 청소년 커플의 행보는 미스터리 구조로 관객에게 제공된다. 다영이 격동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숙제로 제출한 '추억일기'를 읽은 담임교사가 당사자와 대면해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다영이 성적에 반영도 되지 않는 방학 숙제를 혼자만 제출한 데 놀라고, 과제물에 기록된 제자의 일탈에 당황한다.
관객은 숙제 내용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상담실 내에서 벌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면담은 밀실 추리극에서 진실 공방으로 전환되고, 다영이 말한 것과 숨긴 것 사이에서 교사는 물론 관객 역시 어디까지 진짜인지 흡사 미적분 공식을 풀이하는 기분이 될 테다.
17살 다영과 병훈이 그들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안쓰럽게, 하지만 정감과는 거리가 멀게 펼쳐지는 가운데 사건에 말려드는 주위 어른들 역시 수난을 치른다. 홀로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온 다영의 엄마는 모범생 착한 자식으로 믿던 다영의 대책 없는 처신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평소와는 달리 격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주인공의 모든 문제의 원흉이 된 첫 선택을 자극한 셈이라 볼 수 있는 성인 커플 역시 합리적 판단을 내리거나 주인공을 돕는 역할보다는, 닳고 닳은 어른의 교활한 지혜로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본말을 확인하는 위치에 놓인 담임교사 역시 합리적 중재자로 보기엔 확신이 서지 않는 존재다. 주위 어른들에겐 10대 청소년들은 이해가 불가능한 '괴물'이 돼 버렸다. 그들 또한 주인공(들)과 별반 차이 없는 10대 시절을 보냈을 텐데도 말이다.
물정 모르는 어설픈 괴물은 어른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들은 자신들이 딱히 어른들과 별 차이 없으리라 믿었을 법하다. 정작 일이 터지자 삶에서 온전한 책임을 진 적 없는 그들은 패닉 상태로 치닫는다. 그 행보가 영악이나 교활과 거리가 멀기에 관객은 10대 주인공들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뭉치 짓을 보면서 공감이나 이해는 딱히 되지 않아도 애처로움과 연민에 도달하게 된다. 자꾸 책임 못질 일을 저지르는 게 그런 밉상이 없지만, 화가 좀 진정되면 (다영 엄마나 그들과 재수 없게 엉키는 성인 커플처럼)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어른의 도의는 그런 것이다.
영화는 굳이 애써 결말에서 '그래도 주인공들은 성장했습니다' 식의 억지 마무리를 맺을 생각이 전혀 없다. 17살 청소년 커플은 그들이 (아마 평생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을) '영원한 여름방학'이라는 연옥에 갇힐지도 모른다. 적어도 결말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들은 자신들이 질러댄 온갖 사건사고의 대가를 치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숙한 청소년들을 '사회가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식의 환경결정론이 들어설 여지도 희박해 보인다. 그저 자신들 역시 훗날 과거를 회고해 보면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랬을까 할 만큼 첫사랑의 열병은 두 주인공을 (반어적 의미로) 아주 특별한 여름방학으로 휘감아버렸다.
더 당혹스러운 건 정작 그들의 사건과 대가의 과정은 세상에 알려질 일이 아니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 몇몇을 제외하면 누구도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햇살 푸르고 하늘은 맑던 그해 여름은 오직 다영과 병훈에게만 평생 잊히지 않을 깊숙한 생채기로 남을 테다.
10대의 어수룩한 연애 대가로는 상처가 너무 쓰리다. 하지만 모든 게 그들 선택의 결과이니 누굴 탓하랴. 감독의 카메라는 그저 문득 일어날 법한 '사건'을 돋보기로 관찰해 관객에게 보일 뿐이다. 바로 그런 관점과 태도가 <그 여름날의 거짓말>을 일본 청춘 영화의 중력 속으로 빨려드는 한국 독립영화 홍수 속에서 아주 특별한 변주로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