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숙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 26회째를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지난해에 비해 예산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서울시 예산은 물론이고, 현 정부의 기조에 맞춰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영화제 지원 사업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숙경 집행위원장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이유다.

지난 22일 열린 개막식에서 배우 봉태규와 함께 사회를 보던 변영주 감독은 "여러 아티스트들이 기꺼이 공연해주겠다고 했지만, 조명과 스피커 설치할 돈이 없어 부득이하게 축하 공연은 하지 못하게 됐다"며 후원을 강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올해 영화제가 택한 캐치프레이즈는 '웃음의 쓸모'다. 좌절만 하지 않고,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올해 서울여성국제영화제는 그동안 상암동 메가박스에서 진행한 것과 달리 홍대입구 인근 CGV 두 곳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영화제가 한창인 25일 오후 이 집행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때론 관객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오다 지난해부터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여성영화인의 요람

26년을 거치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이뤄놓은 결실이 꽤 크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등은 영화제 초기에 아시아단편선 부문에서 수상한 주인공들이다. 영화 <우리들>로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은 윤가은 감독,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또한 모두 해당 영화제에서 단편으로 주목받고 장편 연출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여성 영화인들을 계속 지원·발굴하는 작업을 지속한 게 가장 큰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과 화두를 던지는 역할도 했다. 여성계, 여성주의자, 여성 영화인, 혹은 페미니스트 등 외부에서 보면 마치 하나의 색으로 보이지만 이 안에서 보면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다. 언어도 다르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포럼을 열거나 관객과의 대화를 하며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도록 여성영화제가 꾸준히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올해엔 한국간호과학회와 같이 특별 포럼을 연다. 그리고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FFF(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WDN(여성 감독 네트워크)에서 함께 '우리는 왜 모이는가'라는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한다.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도 다양한 색이 있기에 접점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는 이들을 여성주의라고 눙칠 수 없는 이유다. 각 사회든 집단이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법이다. 최근엔 LGBT(성적소수자)를 비롯해 소수자성을 강조하며 연대를 꾀하고 접점을 확장하려는 흐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경제적·정체성 차이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듯 여성이라는 이름 안에서도 다양함을 반영해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단순히 그 다양성을 평면적으로 펼치는 게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별로 이어지진 않는지 질문하면서 영화를 통해 보거나 포럼을 통해 보는 식이다. 일부에선 영화제가 남성을 배제한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의 시선에 남성의 삶도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성소수자 관련해서도 단순히 정체성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위 정상적이라 얘기되지 않는 것에 카메라를 대고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시행착오, 그리고 청사진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변재란 이사장(오른쪽)과 이숙경 집행위원장(왼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변재란 이사장(오른쪽)과 이숙경 집행위원장(왼쪽)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 집행위원장은 영화계 안에서도 여성 운동이나 여성주의를 대하는 태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실을 짚었다. 2017년부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함께 하면서 관찰해 온 흐름과 직접 영화제 조직 안으로 들어와 겪고 있는 일들의 차이를 체감하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올해 자랑하고 싶은 기획전 중 하나가 애니메이티드 특별전인데, 여성 작가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리고 WDA, FDSC의 디자이너들 젊은 감독님들을 보면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화 방식이 우리 때와 너무도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위계를 강조하지 않고 서로 잘하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높여가더라.

영화제 입장에선 이런 조직들이 만들어 낸 연결의 가능성을 어떻게 지속하게 할지, 담아낼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 영화제의 미래와도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 관련 큐레이션도 마련했는데 여기서 지금 세대의 정치 활동이란 것은 무엇인지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 담론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치란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어제 영화제에서 <열 개의 우물>이란 작품을 봤는데 판자촌에서 빈민 활동하시는 여성운동가들, 책방을 운영하며 활동하는 분들 등 다양한 운동가들이 등장한다. 미투 운동과는 좀 다른 스스로 운동가라 이름 붙이지 않은 분들이다. 그게 일상 정치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장선상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지속가능성 또한 집행위원장의 큰 숙제였다. 약 8억 원 가까운 돈이 삭감된 상황이지만 그는 "몸이 힘들긴 하지만 결코 위축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집행위원장 2년 차를 맞아 서울시는 물론이고 행사가 열리는 마포구 등 지자체와 적극 소통하고, 개인 및 기업 후원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후문이다.

"국고 지원을 운영비로는 쓸 수 없기에 영화제가 스스로 스태프 운영비 등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부산과 전주, 부천을 제외한 중급 영화제 중 운영비를 자부담하는 곳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저도 586세대지만 더 이상 개인의 열정을 담보로 헌신을 요구하는 때는 지났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기본적 생활은 유지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보려고 한다.

영화제가 이제까지 올 수 있던 이유는 꾸준히 후원해주시는 개인 후원자분들과 기업 후원 덕이다. 영화제를 같이 지킨다는 느낌으로 개인과 기업 단위에서 펀딩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분명히 만들고 싶다. 물론 기업 후원을 더 유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적은 돈이라도 개인 후원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좋다고 본다. 그게 영화제 정체성에도 맞다. 물론 국고 지원 예산이 줄어드는 것에 걱정은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제가 왜 지속돼야 하는지를 서로 같이 질문하면서 나름의 근력을 키워간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멋있는 여자들이 교류하고 토론하는 곳, 서로가 자기 위치에서 얼마나 치열했는지 나누는 곳. 이 집행위원장이 갖고 있던 여성영화제에 대한 기억 일부다. 이젠 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해진 의제와 쟁점을 인식하고, 현실 속에서 직면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지치지 않고 그 중간다리가 되겠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었다.

"여성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문제도 그렇고 그 안에서 결국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나. 집단 안에서 늘 생각이 같은 사람만 있을 수 없다. 여성주의나 여성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그렇다. 내부에서 열심히 참여하는 이들이 있고, 언제 한번 가볼까 하는 이들이 있고, 무섭다며 피하려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근데 막상 오시면 되게 좋았다는 반응이 많다. 여성영화제가 일종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확실한 해결 방안 제시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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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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