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癌, Cancer, 악성 신생물)'은 현대의학으로도 인류가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최악의 난치병이자, 매년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공포의 질병으로 불린다. 2022년 기준으로 전세계 970만여 명의 인류가 암으로 사망했으며, 이는 사회지도층이나 유명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인들에게 더욱 무서운 것은, 무려 1000여 종에 이르는 발암물질이 우리 일상 곳곳에 널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5년까지 암환자가 무려 77%나 증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암은 어떤 병이고 왜 생기는 걸까. 과연 인류는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인류는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8월 2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인류가 가장 정복하고 싶은 난치병, 암의 역사'편이 그려졌다. 국립암센터 최고연구원 김수열 박사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인간의 육체는 약 20-30개조에 이르는 정상세포의 분열과 사멸을 통하여 유지된다. 세포가 노화하면 스스로 사멸하는 정상세포와 달리, 암세포가 생기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세포가 죽지않고 세포분열을 통하여 무한증식하게 되고, 이러한 돌연변이 세포들이 모여 커다란 악성 종양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가 부르는 암이 된다.

이러한 암의 종류는 무려 수백가지에 이르며 신체 어디서나 발병할 수 있다. 또한 전신을 도는 혈액에도 암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혈액암의 대표적인 질환은 백혈병은 급성의 경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1년내 90%가 사망할만큼 공포의 질병으로 불린다.

암은 그 발생위치에 따라 형태,종류, 생존율, 치료방법, 재발 가능성이 모두 달라서 치료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인체에서 암세포가 발병하지 않는 곳은, 죽은 세포로만 이루어져 더 이상 세포가 자랄 수 없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 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암의 흔적이 발견된 기록은 고대 이집트였다. 이미 기원전 4천년경에서 외과 수술까지 시행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의 의학기술은 매우 뛰어났다.

한 유골에서는 이집트 의사들이 머리에 생긴 암을 제거하기 위하여 외과적 수술을 시도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한 임산부와 파라오의 미라(Mirra)를 분석한 결과 사망원인이 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에서 유독 암 연구가 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라를 제작하는 문화 속에서 사람의 몸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몸속에도 종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임호텝(Imhotep, 기원전 원전 2650-2600년 추정)은 고대 이집트의 대제사장이나 의학자, 공학자로도 활약한 당대의 천재로 꼽힌다. 그는 암이라는 병명조차도 없던 시절, 세계 최초로 암을 기록한 인물이기도 하다.

임호텝은 48가지 질병에 대한 지식과 치료법을 파피루스에 적어 의학서를 제작했고, 여기에는 유방암으로 추정되는 증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임호텝은 유방암에서 대해서는 치료법을 '없음'으로 기록하며 고대 의학으로는 아직 정복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암을 최초로 정의한 인물'이다. 그는 유방암 환자의 증상을 보고 울퉁불퉁해진 피부 표면에서 게의 등딱지를 연상하며, 이러한 악성종양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게를 의미하는 카르키노스(Karkinos)로 명명했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며 라틴어와 영어로 변형되면서 암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Cancer'가 공식용어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동양에서는 12세기 남송 시대에 지어진 위제보서(衛濟寶書)라는 의학서를 통하여 유방암의 종양이 마치 바위(巖)처럼 딱딱하다는 데서 변형되어 암(癌)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당대 최고의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에게도 암은 전혀 손쓸 수 없는 병이었다. 당시 의학기술의 한계로 종양을 섣불리 건드리면 출혈이 심하고 예후가 좋지 않아 환자가 더 빨리 사망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처방이란 '암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편이 환자들이 오래 사는 길'이라며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라는 결론이 전부였다.

또한 로마제국 시대의 의사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129-199)는 이후로 1500년 가까이 인류의 암 연구를 중단시키게 만든 원흉으로 꼽힌다. 그는 '검은 담즙'이론을 통하여 몸속에 있는 검은 담즙이 암을 일으키는 것이고 외과수술로 치료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의학에서 암 치료의 기본이 '제거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 갈레노스의 이론은, 오히려 고대 이집트 시대보다도 더 퇴보한 가장 '최악의 오답'이었던 셈이다. 갈레노스의 검은 담즙 이론은 중세 시대까지도 지속되며 합리적인 암 의학 연구를 퇴보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랫동안 정체된 암 연구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해부학(解剖學. Anatomy)의 발전이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까지 종교적 세계관이 강력한 시대만 하더라도 해부학은 금기로 치부되며 터부시된 학문이었다.

벨기에의 의학자 안드레우스 베살리우스(1514-1564)는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통한다. 그는 실제로 숨많은 인체해부를 통하여 갈레노스의 오류를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베살리우스의 증명으로 검은 담즙이론이 사라지면서 해부학의 발전은 암 치료의 토대를 마련하는 초석이 된다.

암 극복 위한 방법 모색

본격적으로 암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인류는, 첫 번째 단계로 종양 제거술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15-18세기까지만 해도 외과수술은 종양을 제거하고 상처부위를 봉합할 수 있는 기술이 미흡했다. 암 환자들은 수술을 받고나면 커다란 흉터와 함께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예후도 좋지 않았다.

18세기의 유명한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알렉산더 먼로의 기록에 따르면 2년간 60명의 유방암 환자를 수술했는데 살아남은 사람이 단 2명뿐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암으로 죽느냐, 수술받다 죽느냐 절망적인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야했다. 19세기에 접어들서야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마취제'와 '소독약'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이전보다 안전한 수술이 시행되며 암 제거술의 성공률도 높아지기 시작한다.

미국의 의사인 윌리엄 할스테드는 '외과의 아버지' '마취제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할스테드는 종양제거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환자들이 몇 년 뒤에 또다시 암이 재발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할스테드는 종양 주변의 모든 조직을 떼어내는 '근치적 유방 절제술'을 처음으로 시도하여 최대한 암이 다시 자라날 여지를 주지않는 수술법을 개발한다. 이러한 할스테드의 수술법은 비록 과도한 절제로 인하여 위험부담도 컸고 당시에 많은 희생자를 낳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훗날 의학계에서 종양 제거술 분야에 진일보한 성과를 이뤄내는데 기여하게 된다. 할스테드의 수술법을 기반으로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변형절제술이 등장했고, 이제 국소 부위에 국한된 암은 수술로 얼마든지 제거할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미경'의 발전은 인류가 암을 직접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838년 독일의 생리학자 요하네스 뮐러가 암의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암이 체내 세포에서 시작되어 전이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게 된다. 이로서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의 암도 진단할 수 있게 되었고, 암을 조기에 확인하고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제거술에 이어 인류가 찾아낸 두 번째 암 치료법은 '방사선'이었다. 1895년 에밀 그루브는 엑스선 기계를 이용하여 최초로 유방암 치료법을 발견한 인물이다. 그루브는 진공관 공장에서 일하다가 방사서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피부와 손톱이 빠지는걸 목격했고, '방사선이 세포를 죽이는 원인이라면, 세포로 이루어진 암도 방사선으로 죽일수 있지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마리 퀴리는 엑스선보다 1000배나 더 강력한 '라듐' 방사선을 발견하여 암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방사선 피폭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줄이고, 암 치료에 효과적인 방사선의 적정량을 찾게된다. .

이제 인류는 더 나아가. 암은 왜 발병하는지 그 근본 원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병리학자 야마기로 가쓰사부로는 1915년 화학물질에 인체가 반복노출시 암에 걸릴수 있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해냈다.

WHO는 1970년대부터 신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역학조사를 통하여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을 조사하여 지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흡연, 알콜, 자외선, 미세먼지, 가공육 등,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 대상들이 다수 포함되어 경각심을 주고 있다.

항암제(抗癌劑, antineoplastic drug) 시대의 개막은, 오늘날 인류가 암 정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기존의 암 제거술과 방사선 치료가 주로 암이 한 부위에 몰려있을 때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면, 항암제를 통하여 몸 곳곳에 암세포가 퍼진 전이암에 대해서도 치료가 가능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최초의 항암제는 대량살상무기인 '독가스'에서 비롯됐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생화학무기로 겨자가스라는 독가스를 개발하여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그런데 독가스로 사망한 시신을 부검한 결과, 체내의 백혈구가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겨자가스를 가공하여 혈액암 환자에게 치료약으로 투여하자 거짓말처럼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1949년 질소 겨자는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최초의 항암제가 된다. 처음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상무기로 개발한 독가스가,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미국 국립 연구소에 무려 약 16조 원의 연구비를 투입하며 국가 차원에서 암 치료와 연구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미국은 달 착륙 등에 성공하며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낙관적인 '세계제일주의' 정서가 지배하던 분위기였고 암 역시 몇 년만 연구하면 정복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하지만 미국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은 아직까지 수많은 암의 치료법과 정확한 발생 원인을 모두 규명해내지는 못하면서 '암과의 전쟁'은 기대만큼의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한 '암과의 전쟁'은 암 치료와 연구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않다. 현재 항암제는 초기 화학 항암제에서 2단계인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 항암제, 3단계로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면역 항암제'등으로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비록 항암제라고 해서 모든 암을 100% 치료하는 것은 아직 아니지만, 암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암세포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거에 비하면 크게 진일보한 대목이었다. 현재 인류는 더 완전한 4단계 항암 치료법개발을 위한 노력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암치료는 여전히 난제

현대에도 암치료는 여전히 어려운 난제다. 암세포 역시 무한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예측하기 어려운 돌연변이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암이 무서운 공포인 가장 큰 이유는 소리없이 찾아와 몸을 잠식할 때까지 알아채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5년 세계적임 암 연구 권위자라는 버트 보겔스타인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암은 흡연같은 위험요인보다 '운이 나빠서' 걸리는 것이다. 암 유형의 3분의 2가 과학자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운과 관련이 있다"는 놀라운 발언으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만큼 암이 인류에게 있어서 여전히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지는 것은 끝장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만두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어록이다.

인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전히 암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인류가 암을 아직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암도 불치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도전과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인류는 암을 정복하기 위하여 의술과 항암제를 개발하여 수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최초의 항암제가 우연한 계기로 개발된 것처럼,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연구를 바탕으로 언젠가는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날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벌거벗은세계사 항암치료 난치병 악성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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