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스위프트의 고전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어릴 적 대충 압축한 아동용 판본으로 처음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원제목에 명시된 '네 개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건 첫 번째 이야기인 '소인국 릴리퍼트', 혹여나 조금 더 기억력이 좋다면 두 번째 이야기인 '거인국 '브로브딩내그'에 그치기 일쑤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아일랜드 출신이던 스위프트의 집필 의도는 어린이용 모험소설이 아니라 당시 영국 정치의 이면을 꼬집기 위한 블랙코미디 시사 풍자에 있었고, 이를 위해 네 개의 이야기는 각각 당대 영국의 허실을 풍자하는 몫을 분담하고 있었다. 즉 4개 에피소드 전체를 소화할 때에만 온전히 작가의 의도에 근접할 수 있는 셈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네 번째 이야기는 말들의 나라 '후이넘'에서 펼쳐진다. 가장 노골적으로 영국은 물론 당시 서구 문명에 대해 냉소적인 대목이지만 우리는 인간의 대척점에 선 '후이넘'보다는 훗날 한때 전성기를 구가하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인터넷 검색엔진 이름을 더 잘 떠올린다. 바로 (후이넘 나라에서 인간의 악덕을 깨닫게 만드는 존재) '야후'다.
세 번째 이야기는 그보다 더 대부분 건너뛰곤 하는 특색 약한 에피소드다. 다행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요 배경인 공중도시 '라퓨타' 덕분에 세 번째 이야기 중 가장 중심인 곳의 이름과 특징이 오히려 알려진 셈이다. 라퓨타 주민들은 당시 영국과 유럽에 비해서도 고도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된 곳으로 묘사된다.
유독 세 번째 이야기에서 걸리버는 지식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낙담과 환멸에 처하곤 한다. 라퓨타는 설정만으론 전 세계 지식인들이 모여드는 학문과 기술의 전당이 돼야 할 테지만, 그곳의 지식인들은 사색과 연구에 빠진 나머지 기괴한 형상으로 주인공을 질리게 만든다. 머리와 육체가 분리된 것 같은 일상을 살다 보니 타인이 다가와도 알아채지 못하기에,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하인이 없으면 외부와 고립될 뿐이다. 정작 그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발상은 거창하지만 실제로 현실 세상에 무익한 몽상에 그친다.
우리는 종종 그런 라퓨타 주민들과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평범한 이들은 이해 불가인 과학자들을 등치하곤 한다. 특히 미적분이나 함수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테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그런 천재 수학자 주인공이 라퓨타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변화의 과정을 다룬다.
수학의 우주에서 추락한 천사, 지상에서 재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