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영화 스틸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첫사랑과 재회해 누리던 짧은 행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커플이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잔디밭에 누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커플이지만, 남자는 '우리의 사랑은 지속 가능한 시간이 제한돼 있어 1년 9개월 후면 식을 것'이라는 둥 초를 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화가 난 여자는 '헤어지자는 말 빙빙 돌려서 하지 말라'며 남자를 후려치고 떠나버린다. 딱히 지금 헤어지자는 의도는 아니었던 남자는 당혹스럽다.
남자는 이후로도 계속 분위기 망치는 소리를 쓸데없이 여기저기 늘어놓다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역설적으로 그가 오욕을 뒤집어 써준 덕분에 그와 접촉한 이들은 스트레스를 풀긴 했다.
남자는 계속 무례한 오지랖을 부려대다 흠씬 맞는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겐 '어차피 그렇게 열심히 살아봐야 치매에 걸려 얼마 못 살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여자 고등학생에겐 '변두리 인생밖에 미래가 딱히 없을 것'이라고,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은 한일 취객들에겐 고도의 양비론으로 약을 올리다 집단구타를 당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적은 피켓을 들고 있던 기독교인들에겐 말도 꺼내기 전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한다.
만신창이가 된 그는 자신을 구원해줄 여자친구에게 화해를 제안하지만, 임시방편으로 구원의 천사를 찾는 그의 간계는 어김없이 빗나간다. 결국에 또다시 여자친구에게 분노의 주먹을 제대로 맞고 쓰러진 그를,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거지가 된 남자가 구조한다. 그에게서 현자의 풍모를 본 남자는 필사적으로 세상의 진실을 캐묻지만, 대답을 듣고 난 그는 그래도 거지보다는 자신이 더 우월한 유전자라며 정신승리로 일관한다.
시스템 손바닥 안에 갇힌 세태를 풍자하다
각각 10대와 20대 전후반으로 추정되는 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그저 영화를 보게 될 대다수 관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존재들이다. 우리 사회 대다수를 구성하지만 무색무취하게 단지 숫자와 통계로만 분류되는 이들의 전형으로 설정된다. 문제아도 엘리트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주목받을 일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개별의 삶은 결코 수치로만 규정될 것이 아니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집요하게 각인시키려 애쓴다.
10대를 대변하는 여고생은 그중에 가장 파국에서 벗어난 이로 설정된다. 땡땡이를 친 덕분에 혼은 좀 나겠지만 결국 원래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세 주인공 중 가장 평범한 현인에 가까운 존재다. 자신은 어차피 우월 유전자가 아니고 현실의 시스템을 초월하기란 만만하지 않으니 주어진 일상에 매진하며 하하호호 친구와 어울리는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단품으로 선공개된 이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장편으로 확장된 이야기의 가장 기원이라 본다면, 해당 이야기의 결말이 가장 원론적인 주제가 될 테다.
20대 전반의 평범한 대학생은 부모세대에게 주입된 과도한 목표 설정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청년세대의 전형일 테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취업절벽 시대를 묘사하는 기묘한 풍자로 여러 학생 단편영화에서 애용(?)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아무리 애를 써 봐야 한국 사회에서 학벌을 포함한 제반 조건은 이미 주인공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벽으로 우뚝 솟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 꿈을 그래도 계속 쫓고 싶지만, 그의 몇 안 되던 편도 하나둘 떨어져 간다.
그래도 아빠의 격려를 믿으며 미몽을 포기하지 않던 그에게 아빠가 날린 무책임한 일갈은 충격과 공포나 다름 없다. 아마 이 에피소드 속 주인공의 심정이 감독이 자기 세대를 대변해 기성세대에게 날리고픈 우회적 펀치가 아닐까. 끝내 미몽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거지가 되는 상황은 곧바로 세 번째 에피소드로 연결된다.
세 번째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렇게 기성세대와 시스템 안에 갇힌 채 길이 들여진 '노예'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런 가운데 일찌감치 포기한 여고생과 달리 이어지는 에피소드 속 20대 청년들은 참담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한국 근대문학 작품 제목처럼 '두 파산'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하나는 사회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다른 하나는 겉으론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인성적으로 '강약약강'을 체화한 존재가 될 테다. 그런 실정인데도 이들은 서로 내가 조금 더 낫다며 으르렁댈 따름이다.
현재 한국 사회를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