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별세한 정광석 촬영감독

8일 별세한 정광석 촬영감독 ⓒ 한국영상자료원 소장자료

 
1960년대 한국영화 첫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던 정광석 촬영감독이 8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정광석 촬영감독은 1956년 정창화 감독 <장화홍련전>에 스태프로 들어온 이후 1962년 조봉래 감독 <새댁> 촬영감독이 됐고 이후 1984년 배창호 감독 <고래사냥>, 하명중 감독 <땡볕>, 1985년 배창호 감독 <깊고 푸른 밤>, 1989년 박종원 감독 <구로아리랑>, 1991년 박광수 감독 <베를린리포트>, 1993년 강우석 감독 <투캅스>, 1996년 한지승 감독 <고스트 맘마>, 1996년 이명세 감독 <지독한 사랑>,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1980년~1990년대 한국영화 대표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필모그라피만 185편에 달한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광석 감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서대문 동양극장에서 몰래 본 영화 속 스크린 세상이 운명처럼 20대의 그를 영화계로 이끌었다. 한국전쟁 때 군에 입대해 육군본부에서 사진 촬영과 현상을 담당해 촬영 기술의 기본을 익혔고, 홍성기 감독의 연출부로 있던 지인의 집요한 설득으로 정창화 감독 <장화홍련전>(1956) 조명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가 김영순 촬영감독의 눈에 들어 촬영부로 옮겼다.

데뷔작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작품의 촬영을 꾸준히 맡아 했고 1968년 한 해에만 12편의 작품을 촬영하기도 한 실력있는 촬영감독이었다. 유능한 기술뿐 아니라 모든 작품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능력, 현장에서의 순발력 등이 작용했다. 그가 생각하는 촬영감독은 단지 감독의 요구대로 촬영하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미학적 판단과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자의식을 지닌 예술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광석 촬영감독은 이를 직접 경험으로 보여줬다. 

시카고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은 <땡볕>(하명중, 1984)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춘호가 죽어가는 순이를 지게에 지고 물길을 거슬러 가는 장면으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배치된 인물들이 잔인한 운명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이 장면은 촬영을 끝내고 철수하는 중 그가 우연히 바라본 풍경에 매료되어 연출자에게 제안해서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1980년~1990년대 신인감독 조력자
 
 강우석 감독 <투캅스> 촬영현장에서 정광석 촬영감독

강우석 감독 <투캅스> 촬영현장에서 정광석 촬영감독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미학적 판단과 제안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데뷔한 신인감독들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1986),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1989),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1992),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1998) 등 당시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을 촬영했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는 이후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 (1984), <깊고 푸른 밤>(1985) 등 모두 8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생전 정광석 촬영감독은 "배창호 감독이 항상 의견을 구하고 말을 경청했고, 여러 안을 가지고 상의하며 작업했기에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로드무비인 <고래사냥>은 로케이션 촬영이 다수였고 단 한 번의 촬영 기회밖에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그의 순발력과 직관적인 촬영이 특히 빛을 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정광석 촬영감독은 2000년대 촬영감독이 영상의 미학적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오퍼레이터를 따로 두는 DP시스템을 충무로에 도입했을 만큼 영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고집을 지녔지만 1960년대 한국영화의 영세한 제작 환경에 맞춰 빠르고 신속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정광석 촬영감독은 영화계가 원한 유능한 촬영감독이었다.  

1983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제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촬영상, 1984년 <땡볕>으로  제23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및 시카고국제영화제 최우수촬영상, 1999년과 2000년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청룡영화상 촬영상과 대종상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 촬영감독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빈소는 쉴낙원 김포장례식장 특6호실에 마련됐고, 10일 오전 10시 발인한다.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 
정광석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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