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신임 영진위원으로 선임된 양윤호 감독(왼쪽)과 한상준 교수(오른쪽)

지난 5월 24일 신임 영진위원으로 선임된 양윤호 감독(왼쪽)과 한상준 교수(오른쪽)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는 4일 2024년 제9차 임시회의를 열어 호선을 통해 한상준 영진위원을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앞서 한상준 영진위원은 지난 5월 24일 양윤호 감독과 함께 신임 영진위원으로 선임됐다.
 
영진위는 신임 위원들이 임명되면 첫 회의 때 위원장을 호선했으나 위원장에 추천된 인사가 소견과 비전 등을 제시하고 이를 다른 위원들이 숙고한 후 결정하는 방식으로 호선 절차를 개선해 신임 위원 선임 후 11일 만에 위원장을 정했다. 한상준 위원장이 선임되면서 지난 1월 31일 박기용 위원장이 학교 복직 등을 이유로 물러난 뒤 4개월간 이어진 대행 체제도 해소됐다.
 
신임 한상준 위원장은 1958년 생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독일문화원을 오갔던 문화원 세대에 속한다. 시네필 1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양준, 정성일과 함께 성균관대 출신 영화평론가 3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4년 작은영화제에 참여했고, <중앙일보> 기자로도 활동한 전력이 있다.
 
2000년~2003년까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연구교수로 2009년~2023년까지는 서울예대에 출강했다. 2000년~2002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고, 2007년~2009년까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영화음악의 이해>('17년), <트뤼포(시네필의 영원한 초상)>('22년) 등을 출간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인 1986년 일명 <파랑새> 사건으로 홍기선(감독)과 이효인(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이 구속됐을 당시 한상준은 기자로서 이들의 근황을 널리 알렸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이들에게 영치금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1980년대 한국 영화운동의 흐름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점은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부산영화제 탄압 논란 때 기고글 비판받기도
 
 2008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을 때 한상준 영진위원장

2008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을 때 한상준 영진위원장 ⓒ 부천영화제

 
그러나 한상준 위원장에 대한 영화계의 시선이 마냥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의 처신에 대한 설왕설래가 적지 않다.
 
2000년대 이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기는 했으나, 2004년 당시 한나라당 홍건표 부천시장이 집행위원장을 해임해 파장이 컸던 부천영화제 사태가 이어지던 때였다. 영화계가 부천시장의 전횡에 항의해 부천영화제를 보이콧하던 시기에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 전 위원장은 부산영화제에 대한 정치적 탄압 논란이 한창이던 2016년 4월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2014년 세월호 다큐 <다이빙벨>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당시 영화계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부산영화제가 지난 20년간 몇몇 인물 중심의 '동아리 조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데 사태의 근본 원인이 숨어 있다"며 "창립 멤버 중심의 특정 인맥이 집행위를 차지하면서 영화제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했다. 이들은 외부의 비판에 배타적 태도를 보이고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에서 한쪽 편에만 섰다. 그런 가운데 총예산의 절반을 지원하는 부산시를 향해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는 원론적 요구만 거듭할 뿐이다"고 지적했다.
 
부산영화제 사태는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블랙리스트로 이후 법원에 의해 국가범죄로 규정됐는데,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까지 역임한 인사가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표현의 자유 탄압을 부산영화제 내부의 문제인 양 호도한 셈이었다.
 
한상준 위원장은 2014년 박근혜 정권에 의해 영진위원장 최종 2배수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었다. 당시 영화인들은 한상준 위원장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고,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영화계 다양한 목소리 경청하겠다"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2017년 1월 13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3차 공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당시 검찰은 안 전 수석과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는데, 이 내용 중에는 2014년 7월 영화진흥위원장 선임과 관련된 내용 등이 들어 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수석과 조 전 본부장은 "좌파에 영화계가 놀아나고 있다. 정교하게 치밀하게 장기적인 전략과 실행을 해야 한다"는 문자를 주고받았고, 조 전 본부장은 안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에서 "한상준 후보는 어렵게 찾은 우리 쪽 사람. 함께 노력해야", "우리는 언제나 영화와 SNS에 놀아난다", "우리는 언제나 영화와 SNS에서 밀리고 고생한다"는 등의 의견을 나눴다. (관련 기사 : "좌파에 놀아나는 영화계" 문자 파장... 언급된 이들 해명 들어보니 https://omn.kr/m4bd) 이에 대해 당시 한상준 위원장은 "지나간 일이라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었다. 
 
자칫 이명박 정권 시절 임명돼 영화계와 극심하게 대립했던 강한섭, 조희문 위원장 시절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영화계의 산적한 현안을 영화인들과 힘을 합쳐 해결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영화인들과 대립하게 될지는 한상준 위원장의 앞으로 행보에 달린 셈이다.
 
한편 한상준 위원장은 선임 직후 밝힌 포부에서 "협력하고 신뢰받는 영진위가 되도록 영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겠고, 영화 산업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K-무비의 안정된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영진위 영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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