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한 대학교 축제에서 오마이걸이 공연을 마친 후, 사회자는 장기 자랑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멤버들이 공연 중에 마신 생수병을 '상품'처럼 나눠줬다. 어떤 멤버가 마신 물병인지 언급하며 무대 위에 오른 학생들에게 건넨 것이다. 이후 해당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고 삽시간에 비판 여론이 일었다.

결국, 사회자는 지난 23일 대학 총학생회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어제 축제가 마무리될 때 오마이걸 분들이 마신 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준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며 "저의 잘못된 생각으로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오마이걸이 마신 물병을 선물로 받아 당황하기도 했다. 미숙한 행동을 보여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아직도 그렇게 행동해?" 온-오프라인 여론 모두 분노했다. 사회자의 행동이 시대착오적이며, 성희롱이란 의견이다. 부정적인 사안이 벌어진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자정을 외치는 목소리다. 더는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커진 요즘, 대학가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대학가는 '성차별'에 눈 떴다
 
'오마이걸' 오마이걸(효정, 미미, 유아, 승희, 유빈, 아린)(자료사진).

▲ '오마이걸' 오마이걸(효정, 미미, 유아, 승희, 유빈, 아린)(자료사진). ⓒ 이정민

 
젠더적 관점으로 2024년의 대학가를 바라보려면 그 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우선, 총여학생회(총여)가 사라졌다.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를 시작으로 다수의 대학에서 만들어진 총여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고 대학 문화를 남학생들이 주도하던 시절 여성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일각에서는 학내 성차별이 사라졌다며 총여의 폐지를 주장했고, 2023년 기준 서울 소재 49개 대학 중 25개 대학 총여가 위축되거나 소멸했다. 

동시에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재가동)'가 켜졌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운동을 거쳐 한국 사회에선 페미니즘 담론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와 함께 성차별, 성희롱 등 젠더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증가했다. 한편,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견해 차이가 벌어지며 양극화된 성향을 보이고 '페미니즘'이 일종의 금지어가 되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이번 사건을 보고 놀랐다. '지금도 저런 일이 벌어진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아마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와 같은 반응일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성차별이 개선되었다는 걸 느낀다. 예전이라면 스스럼없이 하는 말을 요즘에는 "너 밖에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나"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대학생 B씨 또한 비슷한 반응이다. "학교에서 인권 교육을 의무화했고 해당 교육에는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 폭력 등 젠더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최근 학교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특강을 진행한 적 있는데 참여율이 높았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많은 대학에서 양성평등기본법 등에 의거해 「인권 및 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해당 교육은 법정의무교육으로 학생과 교직원까지 이수해야 한다. 또한 미이수 시 강의 계획서 입력 불가나 성적 조회 불가 등 불이익을 통해 참가율을 높이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여러 제도를 통해 대학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에타' 들어가기 겁난다"... 온라인으로 넘어간 차별
 
 2010년대 후반부터 '단체 카톡방 성희롱'으로 많은 학교들이 지탄 받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단체 카톡방 성희롱'으로 많은 학교들이 지탄 받았다. ⓒ pixabay

 
A씨와 B씨 모두 염려한 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속 차별이었다. A씨는 "현실에서는 차별적인 발언이 줄었지만, 에브리타임(국내 최대 대학생활 플랫폼)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며 "단체방을 통해서 집단으로 여자 학생을 성희롱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말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단체 카톡방 성희롱'으로 많은 학교들이 지탄 받았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동문 남성들이 피해 여성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고, 이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포한 '서울대 N번방' 사건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B씨는 "에브리타임에선 여성을 '페미X'이라 지칭하고 여군을 비하하거나 여성 범죄에 무죄가 많다는 내용의 글이 인기 게시판에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에서 차별적인 이야기를 못 하니까 일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건지, 아니면 젠더 폭력이 음지의 영역으로 넘어간 건지 모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세상은 느리지만, 달라지고 있다. 최근 BBC News 코리아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버닝썬: 케이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 공개 이후 가해 연예인들의 행각이 다시금 조명되며, 강하게 비판받고 있다. 특히 승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성 연예인을 향해 "호감 가는 사람에게 술을 따르라"고 발언한 내용은 온라인상에서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때는 웃겼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다시 보니까 식겁한 장난이다" 등의 반응이었다.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학 축제에서 벌어진 사건은 차별적이지만, 학생들은 이에 단호히 대처했다. 현장 영상에서 "저거 가지면 뭐 해?", "진짜 주는 거야?", "변태 같아" 등 부정적인 반응이 확인된다. 현실 속 성차별을 인지하는 사람은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변화하는 사회를 향한 단순한 반발인지, 퇴행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차별에 놀라고 있고, 오늘의 차별도 부끄러운 과거가 될 것이란 믿음이다.
페미니즘 성차별 대학축제 오마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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