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12라운드 원정 경기장에 물병들이 던저져 있다. 이날 서울과 인천의 경인더비에서는 경기 내내 양 팀 선수들의 거친 몸싸움과 신경전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가 '물병 투척'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게 됐다. 아직도 축구계에 일부 남아있는 폭력적 관중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연맹은 지난 5월 16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홈팬들의 물병투척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천 구단에 제재금 2000만 원과 홈경기 응원석 폐쇄 5경기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인천 팬들을 자극한 책임이 있는 서울 골키퍼 백종범에게도 관중에 대한 비신사적 행위를 이유로 제재금 700만 원을 부과했다. 일부에서 거론되던 최고 수위급의 징계인 '무관중 경기'는 피했다.
사건은 지난 5월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FC 서울의 K리그1 12라운드 경기에서 발생했다. 양팀은 이날 경기 내내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신경전이 극에 달했고,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인천 홈팬들 역시 분위기가 격앙됐다.
경기가 2-1 서울의 역전승으로 끝난 직후,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승리를 차지한 서울 골키퍼 백종범이 인천 서포터즈 쪽을 향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백종범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인천 팬들이 경기 내내 가족까지 거론하며 인신공격성 욕설을 했다"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를 해명했다.
가뜩이나 역전패와 심판 판정에 대하여 불만이 쌓여있던 일부 인천 팬들은 백종범의 행동을 도발로 받아들이고 격분했다. 팬들은 야유와 함께 그라운드 안으로 물병과 이물질을 투척했다. 이 과정에서 관중들의 소요를 말리던 서울 기성용이 물병에 급소를 맞아 쓰러지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 장면은 TV 중계와 온라인의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급격하게 확산됐다. 불필요한 행동으로 관중을 자극한 백종범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그럼에도 여론은 인천 팬들의 과격하고 위험천만한 난동에 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과격한 관중문화 청산하는 전환점 돼야
K리그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면서 재도약을 꿈꾸는 시기에 리그와 구단 이미지에 찬물을 끼얹는 시대착오적인 장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선수들을 대변하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그라운드에서 폭력 사용은 도저히 용납하기가 어렵다. 물병 투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엄중히 대처할 것을 연맹에 촉구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연맹은 경기 감독관 보고서와 감독관 회의 결과를 검토하고 각 구단의 경위서와 상벌위 현장에서의 소명 과정을 거쳐 최종 징계 수준을 결정했다. 상벌위에서 '홈팀은 경기 중 또는 경기 전후 홈 경기장 안전과 질서 유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경기규정 제20조 제6항을 근거로 징계를 내렸다.
연맹은 "소수의 인원이 물병을 투척한 과거의 사례들과 달리, 수십여 명이 가담해 선수들을 향해 집단적으로 투척한 행위이기에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인천은 이달 25일 광주FC전부터 29일 울산 HD FC전, 6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전, 6월 30일 강원FC전, 7월 5일 김천 상무전까지 홈 응원석을 비운 채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홈응원석은 전체 1만 8천여 석 중 약 5천 석에 해당한다.
또한 인천 구단 역시 연맹 징계와 별개로 이미 구단 자체적으로 먼저 사과와 징계 조치에 나섰다. 인천은 경기후 공식 소셜미디어(SNS) 채널을 통해 전달수 대표이사 명의로 물병 투척 사건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하고 "K리그를 사랑하는 팬분들과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향후 우리 구단은 물병 투척과 관련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앞으로 인천은 잔여 홈경기에서도 전 구역의 물품 반입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편 당시 문제 행위를 벌인 관중을 색출하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인천 구단은 영상분석을 통하여 물병을 던진 관중들을 파악했고, 자진 신고와 제보 또한 받고 있다. 인천은 물병투척을 하고도 자진 신고하지 않은 관중들에 대해서는 관할 경찰서에 고발 조치하고 구단의 재정 피해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 조치는 법적 자문을 받아 구단 징계위원회를 꾸린 후에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인 인천 구단 측과는 달리, FC서울은 골키퍼 백종범에게 예상보다 많은 액수의 제재금이 부과된 데 반발하며 또다른 논란의 불씨를 예고했다. 서울 구단 측은 연맹에 재심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서울 서포터즈는 연맹의 결정을 비판하며 백종범의 제재금을 위한 자체적인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구단과 팬들의 주장은, 백종범은 어디까지나 관중 소요로 인한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백종범은 물병투척 사건 이후에도 일부 인천 팬들의 지속적인 온라인 악플과 테러 위협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종범은 이날 연맹의 출석 요구에도 팀훈련 중이라는 사유로 불응했다.
또한 서울 팬들은 과거에도 K리그 경기중 상대팀 팬들 앞에서 세리머니를 벌이고도 징계를 받지 않았던 여러 선수들의 사례들을 거론하며, 그 정도의 도발은 축구경기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백종범만 징계를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백종범의 사례는 앞으로 K리그에서 도발성 세리머니에 대한 하나의 기준으로 남을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선수도 관중을 자극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맞다. 백종범은 피해자인 것도 맞지만, 관중소요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분명히 있기에 징계 자체는 불가피했다. 물론 제재금의 액수가 이전의 사례보다 중한 느낌은 있지만, 연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라운드 내 도발 행위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정리한 것이라면 납득하지 못할 수준의 징계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K리그에 아직도 일부 남아있던 과격하고 비정상적인 관중문화를 청산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단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서포터즈 위주의 관중 문화는 K리그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강성 팬덤들의 반지성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들은 축구장 안팎에서 수많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일반 관중들에게는 K리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축구진입 장벽을 높이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반면 최근에는 광주FC의 서포터즈처럼 상대팀에 대한 야유와 비방 구호없이 오직 자팀에 대한 응원이라는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하여 호평과 박수를 받고 있는 팬덤들도 존재한다. K리그 응원문화도 시대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경기장에서 선수와 가족, 심지어 개인사까지 거론하는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성 욕설, 상대팀 선수와 팬들에게 대한 노골적인 위협과 폭력행위 등이 '축구에 대한 애정'이나 '관행적인 응원 문화'라는 핑계 따위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발상은 이제 축구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미디어와 SNS의 발전으로 이제 과거에는 우발적으로 해프닝으로 지나쳤던 행위들도 실시간으로 모두 공유되고, 영상과 사진으로 박제되어 영원히 증거로 남는다. 존중받아야 할 '축구팬'과 '훌리건'은 엄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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