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 보러 왔습니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여기가 우리 아파트 단지야. 저기가 우리 동."
동네 친구들에게 집을 소개하고 돌아서는 선옥(김자영 분)의 등 뒤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네에서는 꽤 알아주는 아파트 단지의 그 집이 자가는 맞는데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해 세를 줬다는 말이다. 무표정하게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는 그녀가 다음 장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은 오래된 주택이다. 방금 자신의 집이라고 소개했던 그 아파트가 올려다 보이는 지척의 낮은 구옥. 친구들의 말대로 선옥의 가족은 대출금 문제로 자신들의 좋은 집을 세입자에게 내어주고 지금의 집에서 또 다른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영화 <집 보러 왔습니다>는 자가 아파트 마련에 대한 꿈은 이뤘으나 무리한 대출로 인해 정작 자신의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일종의 하우스푸어다.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은 정작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자신이 살기 위한 집을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려진다. 심지어 그 공간이 평생의 노력을 담보로 겨우 건져낸 일생의 유일한 산물이라면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한 모습이 된다.
02.
이 작품에서 아파트는 단순히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선옥에게 아파트는 평생을 때밀이로 살아온 여자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자랑을 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다. 자신의 평생이 깃들어 있는 자부심 혹은 자존심에 해당한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공간을 타인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현실과 별개로, 커다란 상처와도 같다.
아파트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대출금을 빨리 갚고 직접 들어가 살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유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현실적인 문제는 존재한다. 남편의 퇴직금은 벌써 가져다 아파트를 사는데 썼고, 회사에서는 희망퇴직을 받으며 목줄을 조여 온다. 아파트를 살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문제다. TV나 신문에서도 앞으로 부동산 전망이 침체될 것이라는 소식만 들려오니 남편은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집을 팔고 싶어 하는 눈치다.
외부적 상황과 충돌하기 이전에 설명되는 아파트에 대한 선옥의 특별한 감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이후 사건들의 바탕이자 배경이 된다. 그런 욕망에도 불구하고 집을 팔기로 했을 때조차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은 그녀를 분노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내려놓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